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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문정우는 성지원의 시선을 피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네 부모님께서 허락해주지 않으실 거야. 보다시피 내 다리가 이렇게 되었거든.” 다리를 하나 잃었다는 것은 소년에게도 아주 큰 타격이었다. “그래서?” 그럼에도 성지원은 마음이 변하지 않았다. “문정우, 난 너 말고 다른 사람한테 관심 없어. 선택하지도 않을 거야.” 담담하기만 했던 문정우의 눈빛이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래서라니... 내가 옆에서 걸으면 사람들의 시선이 쏠릴 거라는 거 모르고 하는 말인가?' 그를 선택하게 되면 성지원은 영원히 사람들의 이상한 시선을 피할 수 없을 것이었다. 성지원은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두었던 소년을 보며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었다. “날 받아줄 거야?” 작고 뽀얀 그녀의 얼굴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눈도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성지원은 아주 좋은 사람이었지만 그가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었다. 소녀의 이름은 바로 백설희, 그가 목숨까지 바쳐서라도 지켜주고 싶은 소녀였다. 게다가 그와 백설희는 소꿉친구였고 서로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교통사고 때 백설희가 그를 지켜준 덕에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그의 부모님은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말았다. 하지만 지금, 백설희는 그의 삼촌인 문성진에게 잡혀 어딘가에 갇혀 있었다. 문성진은 백설희를 인질로 삼으면서 그를 조종하려고 했다. 그랬으니 그에게 성씨 가문의 도움이 필요했다. 게다가 성지원과 약혼을 하면 그에게 수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었다. 문정우는 곰곰이 생각하는 얼굴로 눈앞에 있는 성지원을 한참 빤히 보았다. 그러더니 그녀가 내민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은 작고 부드러웠다. 그 순간 성지원은 햇살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미소는 티 없이 맑았고 수줍음으로 가득했다. 이런 그녀의 미소를 그는 평생 기억하게 되었다. 열여섯이던 성지원은 사람이 겉과 속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녀의 눈앞에 있는 천사 같은 소년은 사실은 천사가 아니었다. 그리고 악마라고 생각했던 소년도 사실은 악마가 아닐 수도 있었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서야 성지원은 이때의 일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그때 그녀가 선택한 사람이 천사가 아닌 악마였다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을 거라고. 다만 유감스럽게도 시간은 되돌릴 수 없었다... 그때의 생일 파티 이후로 문정우는 성씨 가문에 자주 들락거리게 되었고 성준혁과 김희영은 그를 홀대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들처럼 여기며 아주 잘 챙겨주었다. 성준혁은 안목이 아주 좋은 상인이었고 문정우에게 좋은 선생님이기도 했다. 머리가 똑똑한 문정우는 성준혁이 하나를 알려주면 열을 알았다. 열여덟이던 문정우는 또래 아이들보다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인내심도 있을 뿐 아니라 진취적인 성향을 보였다. 게다가 성지원에게도 아주 다정했다. 2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문정우는 성준혁과 김희영의 인정을 받게 되었고 성지원이 열여덟이 되자마자 약혼식을 올렸다. 더는 배우기 싫은 걸 억지로 배우지 않아도 되었던 성지원은 해방감을 느꼈고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렸다. 그녀는 풍경화나 인물화를 즐겨 그렸다. 물론 문정우의 얼굴을 더 많이 그렸다. 문정우는 짜릿한 스포츠에 미쳐있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자신도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평범한 사람들이 하는 스포츠를 전부 시도했고 남들이 겁내던 것도 시도했다. 그럴 때마다 성지원은 늘 그의 옆에 있어 주며 같이 도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함께 스카이다이빙, 번지점프, 스쿠버다이빙, 서핑, 승마, 사격, 스키 등 심지어 레이싱까지 전부 도전해 보았다. 성지원은 사실 자신이 공부를 제외하고 잘하는 게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도전해 보고 나니 그녀가 못 하는 게 없었다. 물론 그들도 반항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뒷수습은 늘 문정우가 해주었고 덕분에 성지원은 언제나 걱정 하나 없이 그를 따라나설 수 있었다. 성지원은 그런 그가 늘 대단해 보였고 멋지다고 생각했다. 문정우를 알기 전까지 성지원은 그가 아주 얌전하고 생활이 바른 모범생이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모범생은 그에게 그저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 속에는 반항심이 가득 숨겨져 있었다. 비록 착한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런 그의 모습에도 성지원은 푹 빠지게 되었다. 스물한 살이 된 문정우는 갑자기 반항을 멈추고 문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엠엔 그룹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스물네 살이 된 올해 문씨 가문을 향한 복수를 전부 마치고 엠엔 그룹의 대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성지원도 어느새 결혼해도 될 나이가 되었고 그렇게 두 사람은 결혼식을 치르기로 했다. 이 꿈은 그녀가 깨기 전까지 계속 영화처럼 재생되었다. 아름다운 악몽에서 깨어났을 때 그녀의 베개는 이미 눈물에 흠뻑 젖은 상태였다. 문정우가 결혼을 취소했다는 소식은 해성에서 빠르게 퍼졌다.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여러 가지 버전의 소문이 만들어졌다. 짧은 시간에 성지원은 해성 최고의 미인에서 모두의 웃음거리로 변했다. 물론 병원에서 부모님과 동생을 보살펴야 했던 성지원은 소문이 어떻게 퍼지고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문정우는 그녀에게 연락 한 통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성씨 가문과 연을 끊으려고 마음먹은 듯했다. 성준혁이 혼수상태라 그런지 요 며칠 김희영의 상태가 이상했다. 이날 밤, 막 샤워를 마친 성지원은 김희영의 비명을 듣게 되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황급히 밖으로 나왔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김희영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엄마, 괜찮아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성지원은 얼른 김희영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러자 김희영은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지원아, 누가 지은이를 데려갔어. 얼른 가서 지은이 데려와. 어서...” 지은이는 바로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된 그녀의 동생이었다. “누군가 지은이를 데려갔다고요?” ‘대체 누가 이렇게 간도 크게 감히 병원에서 남의 아이를 유괴하러 온 거지?' 그러나 성지원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얼른 쫓아나가려고 했다. 이때 김희영은 뭔가 떠오른 듯 그녀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네 아빠... 얼른, 얼른 네 아빠 병실부터 가봐.” 말을 마친 김희영은 성지원을 밖으로 밀었다. 성지원은 잠시 휘청거리다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를 발견하게 되었다. 남자는 성준혁의 병실에서 나왔다. “누구야!” 성지원의 표정이 급속도로 변하면서 소리쳤다. “거기 서!” 남자는 그녀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빠르게 도망쳤다. 성지원은 쫓아가려고 했지만 김희영이 그녀를 불러세웠다. “지원아, 쫓아가지 마. 얼른 네 아빠 상태부터 확인하러 가.” 성지원이 성준혁의 병실로 들어갔을 때 성준혁의 산소호흡기는 이미 바닥에 떨어진 상태였다. 그녀는 얼른 산소호흡기를 주워 성준혁에게 다시 씌워주고는 비상 호출 벨을 눌렀다. 의사는 다행히 제때 발견해 성준혁에게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말해주었다. 연달아 일어난 일에 아무리 바보라도 눈치챘을 것이다. 누군가 성씨 가문을 해치려고 한다는 것을. 다만 성지원은 상대방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조금 전 김희영의 반응이 떠오른 그녀는 김희영이 무언가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녀가 계속 따져 물으니 김희영은 결국 사실대로 말해주었다. 성준혁에게 사람을 보낸 것도, 그녀의 동생을 데리고 간 것도 전부 성준혁의 사촌 형, 즉 제이원 그룹에서 두 번째로 지분이 많은 진형문의 짓이었다. 사흘 전 진형문은 성준혁이 혼수상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기회를 틈타 제이원 그룹의 대표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성지원과 김희영의 손에 있는 지분을 탐냈고 헐값에 손에 넣으려고 김희영을 찾아와 협박하기도 했다. 이건 명백한 약자에 대한 착취였다. 기댈 곳 없는 모녀라는 걸 알고 대놓고 빼앗으려는 것이다. 김희영은 당연히 동의할 리가 없었으니 오늘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오늘은 그저 겁만 주고 물러났겠지만 그 사람은 원하는 게 있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빼앗으려고 할 거야. 다음번에는 네 아빠가 정말로 죽을 수도 있어. 그리고 네 동생도...” 김희영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한 채 소리 없이 눈물만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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