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약자를 괴롭히는 건 너무 하잖아요!”
성지원의 표정이 차갑게 굳어졌다. 두 손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경찰에 신고해서 절대 합의 해주지 말아요.”
그러나 김희영은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우리한테는 증거도 없잖아. 네 동생도 그 인간 손에 있으니까 신고하면 우리가 괜히 자극하는 꼴이 될 거야.”
“그럼 이제 어떻게 해요?”
성지원은 너무도 화가 났다. 제이원 그룹은 애초에 그녀의 부모님이 힘들게 키운 회사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 손에 억지로 넘겨야 한다니. 나중에 성준혁이 깨어나면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만약 시간이 오랫동안 지나고 그럼에도 성준혁이 깨어나지 못했다면 넘겨줄 생각이 있었지만 이제 고작 일주일 지나지 않았는가.
‘진형문은 배은망덕한 사람이야. 우리 아빠가 가족을 지극히 생각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진형문은 백수로 살았을 거라고. 그런데 우리를 협박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니. 지은이는 갓 태어난 지 일주일밖에 안 됐어. 그 어린아이가 그 인간 손에서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지금 이 순간 김희영은 무력감을 느꼈다. 말하는 내내 몸도 덜덜 떨렸고 요즘 일어난 일로 점차 멘탈이 무너져가고 있었다. 그런 김희영을 보니 성지원은 가슴이 미어질 듯 아팠다.
한참 후 그녀는 김희영을 끌어안고 잠겨버린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걱정하지 말아요. 지은이는 제가 꼭 데리고 올 거고 아빠 회사도 지켜낼 거예요. 제가 있는 한 아무도 우리 것을 빼앗아 가지 못해요.”
성지원은 병원 CCTV를 돌려본 후 영상을 핸드폰에도 전송했다. 그러고 난 후 친구들에게 전송해 도움을 요청했다. 다음으로 그녀는 병원 앞에 경호원을 세워두었다.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성지은이 있는 곳을 알아내지 못했고 김희영은 너무도 울어 눈이 벌겋게 부어버렸다. 고작 이틀 만에 몇십 년 더 늙어버린 것 같았다. 초췌한 김희영의 모습을 보던 성지원은 결국 강은호에게 연락했다.
“은호야,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줄 수 있어?”
제이원 라운지는 해성에서도 VIP들만 드나드는 곳으로 통했다. 성지원이 이곳으로 온 이유는 윤재현이라는 사람을 찾기 위함이었다. 윤재현은 해성시에서 꽤 이름이 있는 사람이었고 앞 세계든 뒤 세계든 모두 통하는 인물이었다. 성준혁과도 고가에 어느 저도 인연이 있는 듯했다. 성지원은 의뢰 비용이 아무리 비싸더라도 지금 성씨 가문의 사태를 수습하려면 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는 6층에서 멈췄다. 그러자 자그마한 아이가 비틀대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넘어지려고 했고 성지원은 빠르게 팔을 뻗어 아이가 넘어지지 않게 잡아 주었다. 네다섯 살로 보이는 남자아이는 하얀 티셔츠와 격자무늬 반바지를 입고 있었고 얼굴은 다소 포동포동했다. 살결 또한 보드라웠고 검은 머리는 곱슬머리처럼 꼬불꼬불했다. 아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절로 강아지가 떠올랐다.
“괜찮아?”
귀여운 아이의 모습에 성지원은 저도 모르게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이는 원래 성지원을 밀어내려고 했지만 너무도 부드러운 미소에 행동을 멈추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았다.
성지원은 아이가 놀란 것이라 여기며 다른 한 손을 들어 다정하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달래주었다.
“괜찮아. 안 넘어졌어.”
그럼에도 아이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그녀를 초롱초롱하게 바라볼 뿐이다.
“고마워요.”
그때 머리 위로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고 아이도 그녀의 품에서 벗어났다.
성지원은 고개를 들자마자 칠흑 같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어떤 단어로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으나 남자는 여자들이 절로 빠져들 수밖에 없는 얼굴이었다. 날카로운 턱선과 오뚝한 코, 살짝 올라간 얇은 입술까지 마치 신이 조각한 예술품 같아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하지만 그보다 더 주의를 끄는 건 그 남자에게서 자연스럽게 뿜어져 나오는 분위기였다. 남자를 보자마자 고귀한 기품과 어딘가 절대적인 강자와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한눈에 봐도 평범한 인물은 아니었다.
남자는 그녀의 시선을 의식한 듯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곧이어 고개를 돌려버려 그녀는 왠지 모를 거리감을 느끼게 되었다.
성지원은 자신이 대놓고 멍하니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채고 얼른 시선을 돌렸다. 사실 그녀는 남자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에 잠시 놀랐을 뿐이고 그건 어디까지나 인간의 시각적인 본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남자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아우라 때문인지 이상하게도 넓었던 엘리베이터 안이 숨 막히도록 좁게 느껴졌다. 공기 중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에 그녀는 저도 모르게 강은호 쪽으로 걸음을 옮기면서 남자와 거리를 두었다.
강은호도 남자를 한껏 경계하면서 성지원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그런 그의 모습은 마치 자기 소유물을 다른 남자가 탐내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 같았다. 강은호의 행동에 남자의 차가운 눈동자에는 얕은 비웃음이 스쳤다. 그는 강은호를 무시하는 듯했다.
더 흥미로웠던 것은 남자의 옆에 방금 넘어질 뻔한 남자아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 아이는 수시로 성지원을 힐끗힐끗 쳐다보았고 그녀에게 들키자마자 얼굴이 붉어진 채 고개를 홱 돌렸다. 정말이지 너무도 귀여웠다. 하지만 그녀에겐 심각한 일이 있었던지라 아이한테 장난칠 기분이 아니었다.
엘리베이터는 38층에서 다시 열렸다. 성지원과 강은호는 먼저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성지원의 뒷모습을 보던 아이는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다. 그러나 누군가 아이를 안아 올렸고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나왔다. 아이의 눈은 다시금 반짝였고 성지원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행여나 놓칠까 봐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남자는 그런 아들의 표정을 전부 보고 있었고 조금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의 아들이 ‘무언가'에 이렇듯 깊은 관심을 보이는 것은 처음이었다.
성지원과 강은호는 홀을 지나 안내 데스크 쪽으로 갔다. 그들은 윤재현의 구체적인 위치를 알아내야 했다. 바로 그때 남자와 아이 앞으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가 다가왔다. 여자의 뒤로는 건장한 경호원 열댓 명이 뒤따르고 있었고 그 행렬은 위압적이었다.
여자가 등장하자마자 홀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순식간에 여자에게로 쏠렸다. 성지원은 여자를 단번에 알아보고는 강은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윤재현의 여자야. 이따가 우린 저 여자만 따라가면 될 거야.”
여자의 이름은 홍유빈, 윤재현의 여자였다. 성지원은 예전에 우연히 홍유빈을 만난 적 있었다. 도무지 잊을 수 없는 외모를 소유한 홍유빈은 요염하고 치명적이었고 ‘요물'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여자였다.
소문에 따르면 홍유빈의 수단이 아주 잔인하며 윤재현이 운영하는 각종 건물과 가게 또한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랬기에 아무도 그들의 구역에서 난동을 부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사람들은 홍유빈을 언급할 때마다 저마다 역시 윤재현의 여자라며 감탄했다.
홍유빈은 이미 남자의 앞에 멈춰 섰다. 목소리는 고양이처럼 느긋하고 치명적이었다.
“도련님, 재현 오빠가 이미 음식을 시켜두었어요. 지금 룸에서 기다리고 있으니까 절 따라오시면 돼요.”
남자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래.”
남자의 얼굴에는 별다른 감정이 담겨 있지 않았다. 압도적인 키와 외모 때문인지 인파 속에서 유난히도 눈에 띄었고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에 홍유빈의 존재감마저 묻혀버릴 것 같았다.
사람들의 시선은 절로 홍유빈의 얼굴에서 ‘도련님'의 얼굴로 향했다. 남자는 아이의 얼굴을 손으로 살며시 감추듯 숙여주고는 주변의 웅성거림에도 아무런 반응 없이 앞만 보고 걸어갔다. 홍유빈은 한 무리의 경호원들과 함께 그의 뒤를 따르며 한없이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저 남자는 누구지? 윤재현이 해성에서 어떤 존재인데, 그럼에도 그냥 ‘오빠'라고만 불렀잖아. 그런데 방금 홍유빈이 저 남자를 ‘도련님'이라고 불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