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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민수현은 칼을 거두며 공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성지원은 하도하의 뒤를 바짝 따라가며 하도하의 뒷모습과 오른손 약지의 반지를 번갈아 보며 마음이 좀 복잡해졌다. 하도하의 약지에도 같은 반지가 있다. 그들은 부부로 원래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두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의 결혼은 단지 혼인 신고서 한 장뿐이었다. 방으로 돌아온 성지원은 여전히 하도하를 따라갔고 하도하가 문을 열자마자 먼저 방 안으로 들어가 대담하게 그의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하도하는 튀어나온 이불을 보면서 얼굴을 찡그렸으며 차가운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묻어났다. “성지원.” 성지원은 이불 아래에서 힘껏 숨을 들이마시고는 이불을 아래로 잡아당겨 검은 눈동자를 드러내며 조심스럽게 하도하를 바라보았다. “나가.” 성지원은 입술을 깨물며 거절했다. “싫어요.” 성지원은 하도하가 두려웠지만 여전히 자신의 존엄을 수호하려고 애썼다. 성지원은 하도하가 필요할 때 그의 품에 안기고 필요하지 않을 때 쫓겨나는 여자가 될 수 없었다. 그건 창녀와 다름없는 대우다. 성지원이 하도하의 애인이 아닌 아내가 되려고 한 것도 그런 미천한 여자가 되기 싫어서였다. 아니면 시간이 지나면서 성지원 본인도 아내와 애인을 구분할 수 없을 것이다. “정말 안 나가?” 하도하는 어두운 얼굴로 손을 뻗어 그녀의 이불을 걷어냈다. 성지원은 몸이 굳으면서 그날 밤 있었던 일이 트라우마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가야 할지 남아야 할지는 고민하던 성지원은 결국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로 했다. “나 안 가요. 나를 건드렸으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을 텐데요. 난 도하 씨 아내니까 여기서 잘 거예요.” 하도하는 불쾌한 표정으로 인상을 썼다. “그건 아내로서의 네 의무야.” 성지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부부로서의 의무죠. 그런데 어떤 부부가 침대를 따로 사용하나요?” “정말 안 갈래?” 하도하는 성지원을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눈빛이 더 매서워졌지만 성지원도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하도하는 몸을 기울여 성지원의 몸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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