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다음 날 오전, 나는 일찍 일어나 짐을 꾸렸다.
밤새 들어오지 않았던 김시안이 방으로 들어서다 눈빛이 멈칫하더니 이내 내 손을 꽉 잡아챘다.
“어디 가는 거야?”
나는 고개를 들지 않고 간단히 둘러댔다.
“곧 기말이라, 학교 기숙사로 다시 들어가서 지내려고.”
김시안의 표정이 다시 평온해지더니 습관처럼 내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으며 나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며칠이나 있을 건데? 너 없으면 내가 얼마나 못 견디는지 알잖아.”
예전에는 연인 사이의 이런 달콤함이 좋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왠지 모르게 역겨워져 토할 것만 같았다.
나는 김시안의 품에서 물러 나와 계속해서 짐을 정리했다.
김시안은 무심히 흘끗 보다가 문득 아무것도 없는 내 손가락에 시선을 고정했고 김시안의 눈빛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네 반지 어디 갔어? 어디에다 뒀어? 왜 안 끼고 있어?”
연속되는 세 개의 물음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더러워져서, 잠깐 빼놨어.”
내 착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김시안은 안도하는 듯 보였다.
김시안은 빙긋 웃으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더러워졌으면 그냥 버려. 어차피 값나가는 것도 아니잖아. 내일 더 좋은 걸로 사줄게.”
‘그래, 어차피 값나가는 것도 아니지.’
2년 전, 김시안이 나에게 청혼했을 때 그곳은 호텔방이었다.
격렬한 사랑이 끝난 후, 나는 눈시울을 붉히며 물었다.
“김시안, 나랑 결혼해 줄 거야?”
김시안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주머니에서 아무런 문양도 없는 은반지 하나를 꺼내 내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꽃다발도 없었고 축하의 환호도 심지어 무릎을 꿇는 행동조차 없었다.
그런데도 나는 바보같이 김시안이 나에게 행복을 줄 거라고 믿었었다.
이제 와 생각해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오는 순진함이었다.
트렁크의 지퍼를 닫고 손을 씻으러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휴대전화로 갑자기 알림이 하나 도착했다.
임설아의 소셜 플랫폼에 청혼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흔들리는 화면 속에서 김시안은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소리 속에서 무릎을 꿇고 다이아몬드 반지를 임설아의 손가락에 조심스레 끼워주고 있었다.
조명 아래, 거대한 다이아몬드가 눈부신 광채를 뿜어냈고 그 빛은 나의 눈을 아프게 찔러왔다.
뒤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을 때는 영상이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임설아가 보낸 사과 메시지만이 남아 있었다.
[언니, 화내지 마세요. 어젯밤에 저희끼리 장난친 거예요.]
[저도 왜 갑자기 실수로 태그를 했는지 모르겠어요. 원래는 언니한테 말 안 하기로 다 약속했었는데.]
[언니, 설마 화나신 건 아니죠?]
임설아의 도발적인 말이 쉼 없이 이어졌다.
그때, 문밖에서 김시안이 문을 두드렸다.
“주세린, 넌 어떤 반지 좋아해? 내일 같이 가서 골라볼까?”
이 지독한 괴리감은 마치 보이지 않는 예리한 칼날이 되어 이미 산산조각 난 내 심장을 반복해서 난자하는 것만 같았다.
나는 코를 훌쩍이고는 김시안에게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