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1화

고개를 세차게 저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지만 입술은 저도 모르게 떨리고 있었다. 박윤성은 나를 천천히 어루만지며 진정시키려 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내가 여전히 떨고 있는 걸 본 그는 결국 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내 등을 천천히 아래로 쓸어내렸다. 그의 목소리는 살짝 쉬어 있었다. “출장 며칠 다녀왔다고 벌써 낯설어하는 거야? 응?” 그는 아직도 내가 그저 몇 날 멀어진 출장 때문에 이렇게 된 거로 생각하고 있었다. 박윤성은 내가 자살 시도 후 깨어난 순간부터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우리를 갈라놓은 건 출장 때문에 생긴 며칠간의 공백도 아니고 조민서라는 여자 때문도 아닌 통째로 비어버린 지난 5년이라는 시간이었다. 그는 내가 깨어난 후 처음으로 마주친 아는 사람이었고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감히 다가갈 수조차 없이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달 같은 존재였다. 나는 그를 짝사랑했고 상상 속에서 늘 그와 함께였지만 어느 날 진짜로 그의 아내가 되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그의 더 깊은 모습을 마주하게 된 나는 이 사람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걸 확신했다. 그에 대한 작은 호감은 전부 다 닳아 없어졌다. 나는 그의 냉정함이 싫었고 한눈파는 그의 마음이 역겨웠다. 그의 스킨십도 싫었고 지난 5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부부 행세를 하는 것도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눈시울이 붉어진 나의 눈동자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 놔줘.” 내 목소리는 한없이 약했다. 박윤성은 내 뺨에 스치듯 손을 대더니 그제야 내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느끼고는 움찔하며 동작을 멈췄다. 그의 눈동자가 깊게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는 나를 바라보다 침을 삼키며 믿기지 않는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너 지금... 내가 두려운 거구나.” 오랜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이번엔 의문이 아니라 확신에 찬 단정이었다. 그는 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겨 얼굴 전체를 드러냈다. 그러고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게끔 강요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