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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연회장을 나온 심이연은 정자에 주저앉아 무의식적으로 손목을 긁어대며 자해를 시작했다. 또다시 병이 도진 것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이런 비참한 상황을 마주할 때마다 병세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심이연은 가방에서 우울증과 정신병약을 다급히 꺼냈다. 하지만 약을 입에 넣기도 전, 엄하설이 나타나 그것을 가로챘다. 엄하설은 비릿한 조소를 흘리며 냉소했다. “어쩐지 현준이가 나랑 침대에 있을 때마다 네가 정신병자 같아서 짜증 난다고 하더니, 정말로 병이 있었네?” 심이연은 속이 뒤집혀 신물이 올라올 것 같았다. 두 사람이 잠자리를 가졌다는 사실이 지독하게 역겨웠다. 그리고 그에게만 내보였던 자신의 가장 연약한 모습이 타인에게는 안줏거리가 되고 결국 자신을 난도질하는 칼날이 되어 돌아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 충격에 휩싸인 심이연을 보며 엄하설은 만족스러운 듯 미소 지었다. “어머, 아직 몰랐나 봐? 현준이가 내 병을 어떻게 치료해 줬는지 알아? 침대 위에서였어. 내가 아플 때마다 그이는 나를 안아줬지. 지난 3년 동안 우리가 관계를 맺은 횟수가 아마 그 사람이 네 얼굴을 본 횟수보다 많을걸.” 엄하설의 목소리가 비수처럼 꽂혔다. “심이연, 유현준이 사랑한 건 처음부터 나였고 지금도 나야. 네가 무슨 염치로 그 아내 자리를 꿰차고 있는 거지?” 심이연의 머릿속에 유현준이 했던 약속들이 파편처럼 스쳐 지나갔다. 평생 바람피우지 않고 오직 그녀만을 사랑하겠다던 그 맹세들 말이다. 약속은 유현준이 했건만 바보같이 믿은 건 그녀뿐이었다. 심이연은 당장이라도 엄하설의 뺨을 갈기고 싶었으나 병든 육체는 손을 들어 올릴 힘조차 없었다. 그녀는 그저 죽일 듯이 엄하설을 노려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엄하설, 적당히 해.” 하지만 엄하설은 두려워하기는커녕 경멸 섞인 웃음을 흘렸다. “처음도 아니면서 왜 이래? 넌 이미 예전의 그 고결한 심씨 가문의 아가씨가 아니야. 지금은 그저 범죄자의 딸일 뿐이지. 참, 말 안 한 게 있는데 네 아빠한테 약을 먹인 것도, 정액을 훔친 것도 다 나야. 난 현준의 첫사랑이거든. 내가 외국에서 결혼만 안 했어도 그 사람은 당신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았을 거야.” “그러니 무슨 일이 생겨도 내 편을 드는 거고. 나를 향한 그 지독한 사랑이 내 생각보다 대단하더라. 나를 위해 자기 장인어른까지 감옥에 처넣을 줄은 몰랐거든. 심이연, 지금의 넌 대체 뭐로 나랑 싸우겠다는 거야?” 심이연의 세계가 산산조각 났고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터져 나왔다. 심씨 가문과 유씨 가문은 대대로 가까운 사이였고 그녀는 어릴 적부터 유현준을 남몰래 짝사랑해 왔다. 성인이 되면 고백하려 했건만, 그녀의 성인식 날 유현준은 엄하설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리고 심이연이 마음을 접으려던 찰나 엄하설은 갑자기 이별을 통보하고 외국으로 떠나 다른 남자와 결혼해 버렸다. 유현준이 가장 고통스러워하던 그 시기를 곁에서 지킨 건 심이연이었다. 자신의 진심이 유현준을 감동시켰다고 믿었건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그저 어쩔 수 없는 차선책일 뿐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심이연이 몸을 일으켜 손을 휘둘렀다. 하지만 뺨을 내리치기도 전에 달려온 유현준에 의해 바닥으로 거칠게 나동그라졌다. “심이연, 또 하설이를 괴롭혀! 당신 아버지가 하설이를 능욕한 것으로도 모자라 이제는 당신까지 사사건건 괴롭히는 거야? 온 가족이 하설이를 죽이지 못해 안달 난 거냐고!” 고개가 돌아갈 정도로 얻어맞은 심이연을 보며 주변 사람들은 비웃음을 흘렸다. 늘 우아함을 유지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처참하게 망가진 채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괴롭힌다고? 유현준, 당신 눈이 멀었어! 우리 엄마는 죽고 아빠는 감옥에 갔어. 나도 당신들 때문에 미쳐버렸는데, 저 여자는 멀쩡하게 여기 서 있잖아. 대체 누가 누굴 해쳤다는 거야!” 진실이 눈앞에 뻔히 보이는데도 유현준은 단 한 마디조차 묻지 않은 채 그녀에게 죄를 뒤집어씌웠다. 유현준은 차가운 목소리로 그녀를 내려다보며 쏘아붙였다. “그건 다 너희가 자초한 일이야.” 심이연은 숨이 넘어갈 듯 오열했다. 어릴 적, 그녀가 다른 재벌가 아가씨와 싸워 부모님이 호출되었을 때가 있었다. 분명 상대방이 훨씬 더 심하게 맞았음에도 유현준은 시종일관 그녀의 편을 들며 상대방이 자초한 일이라고 말했었다. 유현준의 마음은 늘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다만 그 대상이 엄하설이 되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후자를 택할 뿐이었다. 이제 상처 입은 것도 그녀고 매를 맞은 것도 그녀이며 모든 비난을 견뎌내는 것도 그녀였다. 하지만 유현준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역시 사랑의 끝은 결국 양심에 달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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