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유현준이 대답이 없자 심이연도 굳이 강요하지 않았다.
“싫다면 관둬도 돼.”
그러자 유현준은 무언가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서둘러 확답을 주었다.
“맡을 거야. 장인어른 사건, 내가 변호해.”
심이연의 창백한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고마워.”
유현준의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예전의 심이연은 결코 그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더 이상 소란을 피우지 않는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평온함인데, 왜 가슴 한구석이 자꾸만 아려오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곧 이 기묘한 감정을 억눌렀다. 심이연이 꺾여 들어오는 게 그저 낯설 뿐, 금세 익숙해지리라 낙관했다.
퇴원 후 5일째, 유현준이 가정으로 돌아온 지도 5일이 지났다.
그는 엄하설과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며 그저 속죄를 위한 행동이었을 뿐이라고 변명했다.
심이연은 반박하는 대신 그저 고분고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식적인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심태우의 공판을 하루 앞둔 날, 유현준이 출국을 선언했다.
그는 인내심 있게 설명했다.
“당신 안심시키려고 하설이를 퇴사시켰어. 그런데 걔가 상심해서 출국했다가 전남편에게 감금당했대. 가서 구해야 해.”
엄하설, 또 그 여자였다.
심이연은 그것이 고의임을 직감했다.
오만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고개를 숙였다.
“엄하설은 해외에 있잖아. 당신이 가면 내일 아버지 재판에 맞출 수 있어? 감금당했으면 경찰에 신고해야지, 왜 당신을 찾아? 유현준, 약속했잖아.”
남자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하지만 결국 그의 선택은 엄하설이었다.
“이연아, 걔는 너랑 달라. 몸도 아프고 내가 있어야만 안정을 찾아. 가족도 없고 의지할 곳이라곤 나뿐이야. 약속해, 내일 재판엔 반드시 참석할게. 이연아, 이제 그만 떼써.”
심이연은 붉어진 눈시울로 울먹였다.
“유현준, 나한테도 아빠는 한 분뿐이야. 당신한테는 엄하설 말고는 소중한 사람이 없어?”
유현준은 심이연의 이런 옹졸한 태도가 진저리난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심이연이 그를 붙잡으며 마지막으로 매달렸다.
“가지 마. 우리 아빠 2심 재판만 제대로 끝내주면 끝나고 바로 이혼 소송 취하할게.”
이것이 심이연이 가진 유일한 패였다.
하지만 유현준은 냉정했다.
“이연아, 이혼은 어차피 안 해. 하지만 하설이 일도 모른 척할 순 없어.”
유현준은 떠났다. 심이연이 소란을 피우지 못하게 경호원까지 붙여놓은 채로.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심이연의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그녀는 소리 없이 물었다.
‘유현준, 당신 정말 당신 마음이 뭔지 알기는 해?’
밤새도록 심이연은 잠 한숨 자지 못하고 유현준의 연락만을 기다렸다.
다행히 그에게서 공항에 도착했으니 곧 귀국한다는 답장이 왔고 심이연은 그제야 안도했다.
하지만 다음 날 재판 시작 30분 전, 유현준과는 더 이상 연락이 닿지 않았다.
그의 휴대폰은 꺼져 있었고 엄하설도 마찬가지였다.
시간은 무정하게 흘러갔고 심이연은 울면서 수백 통의 전화를 걸었지만 유현준은 끝내 받지 않았다.
결국 심태우의 재판은 변호사 불참으로 또다시 패소로 끝났다.
이로써 다시 항소할 기회조차 영영 사라져 버렸다.
그녀의 아버지는 이제 평생 ‘강간범’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법정 안의 심태우는 불과 얼마 사이 십 년은 늙어 보였다. 머리는 하얗게 셌고 사지에는 묵직한 발놀림을 방해하는 족쇄가 채워져 있었다.
한때 한 지역을 호령하던 심 대표는 이제 모두가 침을 뱉고 욕하는 죄수로 전락했다.
심이연은 심태우의 앞에 주저앉아 제 뺨을 끊임없이 후려갈기며 오열했다.
“아빠, 미안해요. 내가 엄마를 죽이고 아빠까지 망쳤어요. 내가 유현준이랑 결혼하겠다고 고집 피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어릴 적 그녀가 사고를 칠 때마다 언제나 심태우가 뒤처리를 해주었다.
그래서 결혼하면 유현준이 그 자리를 대신해 줄 거라 믿었건만, 그는 든든한 버팀목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등에 칼을 꽂는 사람이었다.
‘유현준, 당신을 사랑한 걸 뼈저리게 후회해. 다시 태어난대도 당신만큼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