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1화
“일전에 외국에서 여름 씨는 수 차례 위험한 일이 있었지만 그 녀석들이 보호해 주었죠. 그리고 육민관이 호신술도 가르쳐주면서 점검 스승이자 가족 같은 관계가 된 겁니다.”
“외국에서 무슨 위험한 일을?”
하준이 긴장된 목소리로 물었다.
“여자잖습니까? 그리고 낯선 곳이고. 여자들끼리만 살고 있으니 여러 가지 범죄에 노출될 위험이 높았겠죠.”
최양하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오늘날의 강여름이 되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몰라요.”
심지어 애까지 둘 데리고 미친 듯이 닥치는 대로 일을 하느라 툭하면 병까지 잘 나곤 했었다.
그러나 그 부분은 하준에게 굳이 말하지 않았다.
“형님이랑 백지안만 아니었으면 그렇게 외국까지 나가서 고생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요.”
말을 하다보니 점점 부아가 치민 최양하는 여울을 데리고 자리를 떠 버렸다.
여울은 곧장 자기 놀이방으로 향했다.
하준의 본가에 엄마는 없었지만 하준의 가족은 진심으로 여울을 금이야 옥이야 귀하게 여기며 잘 해주고 온갖 장난감을 사주곤 했다.
놀고 있는데 곧 하준이 휠체어를 밀며 들어왔다.
“여울아, 큰아빠가 부탁이 하나 있는데, 들어줄래?”
하준이 작은 소리로 말을 걸었다. 이렇게 어린 꼬마에게 자신이 뭔가를 간절하게 부탁하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해본 적도 없어 처량한 기분이 들엇다.
“여름이 이모 좀 불러내 줄 수 있어? 네가 같이 놀자고 하면 여름이 이모가 나올 것 같은데?”
“전에 여름이 이모 만나지 말라고 하지 않았어요?”
여울이 고개를 들더니 일부러 꼭 집어 말했다.
“날 납치했으니까 나쁜 사람이라고 했잖아요.”
“……”
하준은 마른 세수를 했다. 자신이 너무나 한스러웠다.
“전에는 큰아빠가 오해를 해서 그랬지. 큰아빠는… 여름이 이모가 너무 좋아. 그래서 여름이 이모가 너무 보고 싶구나. 여울아, 제발 큰아빠 좀 도와주라. 그러면 큰아빠가 무슨 소원이든 다 들어줄게.”
“됐어요. 아무것도 안 해줘도 돼요. 나는 그냥 큰아빠 때문에 여름이 이모가 슬프지 않으면 좋겠어요.”
여울이 입을 비죽거렸다.
“아빠가 이번에 큰아빠 때문에 여름이 이모가 엄청 엄청 슬펐다고 그랬어요. 큰아빠가 지안이 이모 편만 들어줘서 여름이 이모가 혼자서 증거 찾느라고 잠도 못잤대요. 나는 큰아빠가 여름이 이모를 안 만났으면 좋겠는데.”
하준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마음이 괴로웠다.
“이제는 큰아빠가 얼마나 잘못했는지 알았어. 이번에 다시 여름이 이모랑 만나면 완전히 잘 해줄 거야….”
“됐어요. 큰아빠보다 더 잘 해줄 사람도 있는데….”
여울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하준은 흠칫했다. 얼굴이 어두워지더니 말투마저도 확 무거워졌다.
“그게 누군데?”
‘대체 누가 나보다 여름이에게 더 잘해줄 수가 있단 말이야?
설마 여름이 곁에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는 건가?’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자 하준은 가슴에서 불덩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후에엥~ 큰아빠 무서워!”
여울은 자신이 말실수 한 것을 깨닫고 얼른 피하려고 말을 돌렸다.
“여울아, 무서워하지 마.”
하준은 통증을 견디며 휠체어에서 내려와 여울을 안고 간절하게 말했다.
“큰아빠는 정말 여름이 이모를 너무 사랑해. 그래, 전에는 여름이 이모에게 너무 잘못한 게 많았지. 큰아빠도 너무 마음이 아프단다. 이제는 여름이 이모를 자꾸 귀찮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건 아는데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
“전에 지안이 이모랑 있을 때는 여름이 이모가 그렇게 보고 싶지 않았어요?”
여울이 완전히 이유를 모르겠다는 얼굴로 정곡을 딱 찔렀다.
“그게….”
하준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여름이 이모가 보고 싶기는 했는데 내가 오해를 좀 했거든. 난 여름이 이모가 나쁜 사람인 줄 알고 있었어.”
“여름이 이모가 나쁜 사람이면 안 좋아해요? 큰아빠는 착한 사람만 좋아하는구나? 세상에는 착한 사람이 엄청엄청 많은데 그러면 착한 사람 다 좋아해요?”
여울의 질문에 하준은 움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