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1화

하지만 그는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은 채로 몸을 돌려 자리를 떠났다. 이 순간, 유씨 저택은 마치 먹구름이 드리운 듯한 분위기였다. 김희영은 날마다 근심 어린 얼굴로 살아가며 불안에 시달려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설치기 일쑤였다. 사람들이 유도경과 유하연이 서로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만 해도 관자놀이가 지끈거렸기에 입가에는 물집이 하나둘씩 돋아났다. ‘이런 추문이 퍼지면 유씨 가문은 완전히 비웃음거리가 될 거야!’ 그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유씨 가문을 손가락질하고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볼지 뻔했다. 평생을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김희영은 이런 굴욕을 참아낼 수 없었다. 예전엔 자신을 시기하고 질투하던 상류층 부인들이 한데 모여 손가락질하며 비웃을 걸 상상하자, 눈앞이 캄캄해졌고 당장이라도 쓰러지고 싶었다. “이게 다 업보야! 이게 다 업보라고!” 그녀는 가슴을 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리고 다시 남편 유동민을 찾아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목소리로 외쳤다. “유하연 그 못된 계집애가 은혜를 원수로 갚네요! 우리가 어떻게 키웠는데 이렇게 우리 유씨 가문을 짓밟아요? 이러다 우리 가문이 완전히 망하겠어요!” “도대체 언제 손을 쓸 거예요? 저런 배은망덕한 뱀 같은 년은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돼요!” 김희영의 분노와 다그침에도 불구하고 유동민은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눈을 감고 피곤한 기색으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여보, 듣고 있어요?!” 김희영은 남편의 반응에 더 화가 나서 다가가 그의 옷깃을 붙잡아 흔들었다. “당신 도대체 왜 이래요? 설마 그 계집애가 우리 유씨 가문의 명예를 짓밟게 놔둘 생각이에요?!” “유동민!” 계속해서 흔들어대는 와이프의 손길이 거슬렸던 유동민은 결국 참지 못하고 손을 휘둘러 그녀를 떼어내고는 눈을 번뜩이며 소리쳤다. “그만해!” 남편이 성을 내자 김희영은 순간적으로 기세가 꺾였다. “내가 손을 안 쓰고 싶어서 안 쓰는 줄 알아?” 유도경이 유하연에게 보이는 태도를 보면 그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