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7화

유동민은 분에 못 이겨 거의 피를 토할 뻔했다. “그래서 일부러 속은 척 연기까지 하면서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 “그냥 아버지 보시라고 연기 좀 한 거예요.” 유도경은 어깨를 으쓱이며 웃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는 그 서류가 저한테 얼마나 중요한지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그거 하나 날아가면 제가 수년간 쌓아온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지는 건 물론이고, 잘못하면 평생 빚더미에 앉아 다시는 못 일어날 수도 있다는 것도 아시잖아요. 그런데도 망설임 없이 뺏어가셨죠.” “아버지가 그렇게 절 망가뜨리고 싶어 하시니 저는 당연히 그 기대에 부응해 드려야죠.” “어때요, 나름 효자 맞지 않나요?” 유동민은 아예 말문이 막힌 듯 입을 꾹 다문 채 얼굴이 시커멓게 굳었다. 그가 유도경을 바라보는 눈빛엔 더는 부정할 여지가 없었다. 자식은커녕 낯선 이에게도 함부로 하지 않을 눈빛이었고 차라리 죽여버리고 싶다는 살기가 그대로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이쯤 되자 김희영도 뭔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지 못할 리 없었다.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 그녀는 남편과 아들이 날카롭게 맞서 있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다가 한참을 망설인 끝에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도경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아마 그녀도 이제야 어렴풋이 감을 잡은 듯했다. 방금 전 유도경이 했던 말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진심. 유동민은 단순히 아들과 말다툼을 한 게 아니었다. 그는 진심으로 유도경을 철저히 무너뜨릴 작정이었던 것이다. 처음엔 그냥 부자 간의 감정싸움쯤으로 생각했던 김희영도, 이제는 그것이 단순한 불화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 이건 차라리 원수처럼 끝장을 볼 때까지 물고 늘어지는 싸움이었다. 유도경은 비웃는 듯한 미소를 흘렸다. 유동민은 여전히 말을 아낀 채 얼굴만 싸늘하게 굳어있었다. 그 모습을 본 유도경은 마침내 유동민이 벌이려 했던 일을 입에 담았다. 자신이 겪었던 교통사고, 그리고 그 사고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는 것까지 모두 입 밖으로 꺼냈다. 사실 그 사고는 충분히 피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