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6화

고서준이 먼저 나서서 차건우를 제대로 조롱해 줬고 거기에 하지민의 기사까지 더해져 차건우는 한동안 꽤 골치 아플 상황이었다. 비밀번호를 입력한 차건우가 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서아라는 자연스럽게 그를 따라 들어가며 눈에 띄는 변화를 확인했다. 문득, 이 집의 비밀번호가 바뀌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물론 그가 그동안 한 번도 이곳에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에 변경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집 안은 여전히 가구 하나, 소품 하나 바뀐 게 없었고 모든 것이 그녀가 떠나던 그날 그 모습 그대로였다. 사실 그녀가 이 집을 나간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지금 이곳이 낯설게 느껴졌다. 분명 이 집에서 거의 3년 가까이 살았는데도 말이다. 문득 떠오른 기억들, 그 안엔 서글프고 아픈 순간들, 버림받고, 꾹꾹 눌러 삼켜야 했던 날들이 가득했다. 서아라는 한숨처럼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길 하려는 건데? 돌려 말하지 말고, 그냥 바로 말해.” 그러다 고개를 들어 차건우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아, 그 전에 한 가지만 말해둘게.” 그녀의 시선이 남자의 반듯하고 냉정한 얼굴에 닿았다. “이번엔 제발 상황 다 확인한 다음에 판단해. 괜히 또 잘못 짚고 체면만 구기지 말고.” 차건우가 그녀의 비아냥을 모를 리 없었다. 그는 묵묵히 그녀를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임유성 일... 왜 그땐 말 안 했어?” 서아라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되물었다. “왜 말을 안 했냐고? 내가 안 한 게 아니라, 네가 듣지를 않았잖아. 처음부터 끝까지 하지민이랑 한 편 돼서, 내가 예민하고 별것도 아닌 일로 소란 피운다고 몰아갔던 건 너였지. 내게 말할 기회는 줬어? 아니면 줄 마음이라도 있었어?” 차건우는 그날을 떠올렸고 입술을 다문 채 눈빛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짧은 침묵이 흘렀고 잠시 뒤, 그의 낮고 건조한 목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미안해... 그때 그런 상황인지 몰랐어.” 서아라의 말투는 여전히 차가웠다. “몰랐으니까 그냥 이유도 안 묻고 나더러 그 인간한테 사과하라고 했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