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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이명희는 잠시 얼이 빠졌다. 서아라가 감히 자신에게 이런 무례한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내 부들부들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할머니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니!” 서아라가 피식 웃었다. “여사님은 차건우의 할머니지, 제 할머니는 아니잖아요? 우리 친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이명희가 입을 열기도 전에 하지민이 불쑥 끼어들어 못마땅한 눈길을 보냈다. “아라 씨, 아무리 그래도 연장자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건 아니죠.” 서아라는 하지민을 힐끗 바라보며 냉랭하게 받아쳤다. “내가 어떻게 말하든 하지민 씨랑 무슨 상관이죠? 저랑 친해요? 오지랖이 넓다는 생각은 안 들고?” 이명희는 언제나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서아라가 꼬박꼬박 말대꾸하자 자신을 향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다. “건방지구나.” 이명희의 가슴이 들썩거렸고 서아라를 손가락질하며 분노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역시나 못 배운 티가 나네. 어디 내세울 데도 없는 천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지민에 비하면 하늘과 땅 차이군. 그동안 가르쳐준 예절을 다 잊었냐? 어서 무릎 꿇지 않고 뭐 해?” 서아라는 화를 내기는커녕 미소만 짓고 있었다. “미안해서 어쩌죠? 벌써 새까맣게 잊었나 봐요. 아니면 하지민 씨한테 이 자리에서 시범 보여달라고 해주시면 안 돼요? 어떻게 해야 정석대로 무릎 꿇는 건지? 여사님의 총애를 한 몸에 받는 사람이라 고상하게 보이는 방법을 알지 않을까요?” “이...!” 하지민의 안색이 돌변했다. 더욱이 이명희는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당장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민은 급히 청심환 한 알을 꺼내 먹여주었다. 약을 먹고 나자 이명희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무슨 일이야?” 이때, 준수한 외모에 싸늘한 기운을 내뿜는 남자가 성큼성큼 다가왔다. 검은색 맞춤 정장은 1m 89cm에 달하는 훤칠한 키와 반듯한 체형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건우야!” 차건우를 본 순간 하지민의 눈이 반짝였다. 이내 괴롭힘이라도 당한 듯 눈시울을 붉혔다. “아라 씨가 글쎄 널 따라 연회장까지 쫓아온 것도 모자라 할머니를 골탕 먹이려고 작정했나 봐. 계속 말대꾸하니까 결국 화를 이기지 못하고 심장병까지 발작하셨어. 다행히 약을 제때 드셔서 망정이지 아니면 큰일 날 뻔했어.” 하지민은 말을 이어가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라가?” 차건우는 눈살을 찌푸리며 옆에 있는 서아라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시선이 닿는 순간 넋을 잃고 말았다. 연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자의 눈동자는 마치 샘물처럼 맑았고, 영롱한 눈빛은 묘한 매력을 뿜어냈다. 검고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허리까지 흘러내렸고, 한 마리의 요염한 고양이처럼 우아하고 도도했다. 붉은 입술로 그린 곡선 위에 머문 화사한 미소는 현실 너머의 존재처럼 아름다웠다. 서아라와 결혼한 지 어언 3년이 되었지만 이렇게 매력적인 모습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시종일관 웃고 있는 서아라를 보자 하지민이 고자질을 이어갔다. “아라 씨 진짜 너무 하지 않았어? 할머니의 기분을 상하게 해놓고 어떻게 웃음이 나오지?” 서아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지민을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죠? 고 회장님 생신연에서 울기라도 바라는 거예요? 여사님께 저주를 퍼부었다고 하지만 지금 멀쩡히 서 계시잖아요. 오히려 초상집처럼 울고불고하는 사람은 하지민 씨 같은데 대체 누가 누구를 저주한다는 건지 모르겠네요.” 말을 마치자 이명희는 목덜미를 잡고 쓰러질 기세였고, 옆에 있던 하지민이 급히 등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차건우에게 푸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건우야, 지금 이게 사람 입에서 나올 소리야?” 차건우는 서아라를 바라보았고, 목소리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서아라, 할머니께 사과해.” 서아라의 표정은 무덤덤했다. “잘못한 게 없는데 왜 사과해야지?” 차건우의 눈빛이 점점 어두워졌다. 서아라가 어딘가 달라졌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전에는 그가 하는 말이라면 고분고분 따랐고 단 한 번도 반박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대꾸하는 것도 모자라 감히 할머니에게 대들기까지 했다. 한편, 상황이 일파만파 커지자 연회 담당자인 고씨 가문 집사가 심상치 않은 낌새를 눈치챘다. 곧이어 한 중년 남성이 다가와 물었다. “왜 이렇게 시끄럽죠?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겁니까?” 하지민은 이명희를 부축한 채 서아라를 가리켰다. “이 여자 좀 보세요. 초대장도 없이 연회장에 몰래 들어왔어요. 오늘은 고 회장님의 생신 잔치인데 정체불명의 사람이 함부로 돌아다니면 큰일 나지 않겠어요? 자칫 연회를 망칠 수도 있죠.” 집사는 신원이 불분명한 사람이 나타났다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고씨 가문에서 발송한 초대장은 정확한 수만큼만 배포되었다. 게다가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가 몰래 참석하지 못하도록 초대장을 확인한 뒤에야 입장이 가능했다. 아니면 절대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이 여자는 대체 어떻게 통과한 거지? 집사는 곧장 서아라에게 다가가 싸늘하게 말했다. “초대장을 제시 바랍니다.” 서아라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저랑 같이 온 남자 파트너한테 있어요. 금방 돌아올 거예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코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민은 ‘역시나’라는 표정으로 서아라를 비웃듯 바라보았다. “초대장 없으면 그냥 없다고 하지, 왜 그런 거짓말까지 해요?” 이내 눈을 굴리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차라리 할머니께 사과하는 건 어때요? 그러면 내가 건우한테 잘 말해볼게요. 그냥 우리랑 같이 온 걸로 하죠. 여기서 쫓겨나는 것보단 낫잖아요?” 이명희는 노발대발하며 서아라를 손가락질했다. “어차피 사과 따위 받지 않을 거야! 당장 이 파렴치한 계집애를 내쫓아! 꼬라지가 저게 뭐니? 남의 연회장에 남자나 유혹하러 왔어?” 서아라는 하지민을 흘끗 쳐다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여사님 옆에 있는 여자가 저보다 옷차림이 더 야한데요? 게다가 허구한 날 유부남을 불러들이고, 대체 누가 더 뻔뻔스럽고 남자를 밝히는지 모르겠네요.” 논리적인 반박에 이명희는 말문이 막힌 나머지 생트집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얼른 이 여자 끌어내지 않고 뭐 해요?” 집사도 서아라가 끝내 초대장을 꺼내지 못하자 강하게 나갔다. 이내 뒤에 있던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이 분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주세요.” 하지민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 만약 끌려 나가면 체면이 말이 아닐 것이다. 소란스러운 상황에 벌써 많은 사람의 이목이 쏠렸다. 다들 서아라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 서아라는 양쪽에 서 있는 경호원들을 번갈아 보더니 집사에게 말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는 동행한 파트너가 있어요.” 속으로는 참 답답했다. 정윤혁이 하필이면 이때 자리를 비우다니. 이명희의 목소리가 한층 날카로워졌다. “다 변명이니까 얼른 쫓아내요.” “서아라.” 등 뒤로 서늘한 음성이 들려왔다. “어서 잘못을 인정해.” 그녀를 아무리 미워해도 결국 아내인지라 창피를 당하면 본인도 체면이 깎이는 셈이다. 만약 지금이라도 잘못을 인정하면 대신 변호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서아라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쌀쌀맞게 말했다. “싫어.” 차건우의 눈동자가 어두워졌고 잘생긴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이내 입을 꾹 닫고 아무 말 없이 곧 끌려가기 직전인 서아라를 지켜보기만 했다. “무슨 일이죠?” 이때, 훤칠한 인영이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 서아라를 보는 순간 두 눈에 놀라움과 기쁨이 번졌다. “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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