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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서아라가 고개를 돌리자 하지민과 그 옆에 선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꽤 반반한 외모였지만 첫인상은 그리 곱지 않았다. 한껏 치켜든 턱, 싸늘한 눈매에서는 뻔히 깔보는 기색이 흘렀고 그 오만한 태도는 누가 봐도 거슬릴 만큼 도를 넘었다. 그 여자는 다름 아닌 하지민의 절친, 윤수아였다. 윤씨 집안은 차씨 가문과 오랜 세월 얽혀 있는 사이다. 하지민이 외국에 머물던 동안, 윤수아는 자주 이명희를 찾아가 서아라에 대한 온갖 험담을 늘어놓고는 했다. 이명희가 서아라에게 가했던 차별과 냉대 중 절반은 바로 윤수아의 입에서 시작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윤수아가 이번에는 점원을 향해 고압적으로 소리쳤다. “거기, 아직 멍하니 서 있을 거야? 당장 팔찌부터 가져가서 닦으라고!” 직원은 당황한 듯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 팔찌는 이 고객님께서 먼저 보신 상품입니다.” “그래서 뭐?” 윤수아가 콧방귀를 뀌듯 비웃었다. “아직 결제한 것도 아니잖아?” “하지만 이분도 아직 구매 안 하겠다고 하신 건 아니라서요...” “하, 웃기고 있네. 하루 종일 백수처럼 빈둥거리며 남자 등에 기대 살아가는 여자가 이런 비싼 팔찌를 살 수 있겠어? 제정신이야?” 하지만 그녀의 비웃음 섞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서아라가 조용히 말을 잘랐다. “그 팔찌, 제가 살게요. 포장해 주세요.” 직원은 안도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 모습을 본 윤수아는 눈이 확 뒤집혔다. “서아라 씨, 감히 제 앞에서 그걸 사겠다고요? 그것도 건우 오빠 돈으로? 진짜 뻔뻔도 정도가 있지!” 윤수아는 일부러 목소리를 더 높였다. “다들 보세요! 여기 좀 보세요! 몇 년째 일도 안 하고 남자 돈만 펑펑 써대는 여자가 여기 있답니다! 이런 뻔뻔한 여자한테 속지 마세요!” 매장 안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렸다. 하지민이 윤수아의 팔을 조심스레 끌어당기며 나직이 말했다. “수아야, 그만해. 아라 씨가 정말 갖고 싶다는데 그냥 양보하자.” “양보?” 윤수아는 서아라를 아래위로 훑어보며 비웃었다. “자기 힘으로 샀겠어? 남자 돈 아니면 뭘 할 수나 있겠냐고.” 그때, 서아라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내가 먼저 고른 물건인데 누가 누구한테 양보를 해요? 그리고 남편 돈으로 산 게 뭐 어때서요? 내가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한 죄라도 있어요?” 서아라는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수아 씨, 그 열등감은 속으로 좀 숨기고 사는 게 어때요?” 그 말에 주변 사람들의 반응이 즉각 바뀌었다. ‘아, 남편 돈이었구나.’ 불륜이니 내연녀니 하던 오해가 눈 녹듯 사라지자 시선은 곧 흩어졌다. 그제야 하지민과 윤수아의 표정이 확 굳었다. 하지민은 이미 서아라의 말솜씨를 경험해 봤기에 조심스러웠고 윤수아는 예상치 못한 반격에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민은 이미 한 번 서아라에게 말로 밀린 적이 있기에 조심스러워졌지만 윤수아는 달랐다. ‘얘 오늘 무슨 약이라도 잘못 먹은 거 아냐?’ 늘 자신감이라고는 없고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서아라가 어떻게 감히 자신한테 이렇게 맞받아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화를 참지 못한 윤수아는 손가락질해 가며 소리쳤다. “서아라 씨, 오늘 하신 말씀들... 전부 건우 오빠 할머님께 꼭 말씀드릴 거예요!” 서아라는 비웃듯 웃으며 말했다. “수아 씨, 나이도 꽤 된 성인이 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고자질이에요? 문제 생기면 자기가 좀 해결해 보지 그래요? 그래, 가서 일러요. 기다릴게요.” 예전에는 차건우의 눈치를 보며 작은 실수 하나도 두려워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제 서아라의 마음에서 그는 오래전에 지워졌고 더는 신경 쓸 이유도 눈치 볼 필요도 없었다. 정윤혁의 말이 떠올랐다. 이제는 자신이 3년 동안 참아왔던 그 모든 수모와 억울함을, 하나하나 되돌려줄 때였다. 서아라는 직원에게 조용히 카드를 내밀었다. “결제해 주세요.” 직원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카드를 받아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윤수아는 이성을 잃은 듯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이 매장이 어디 건지 제대로 알아? 이 보석 매장, 차 대표님 회사 거야! 지금 내 옆에 있는 분이 누군 줄은 알지? 차 대표님이 가장 아끼는 여인이시다? 뉴스에 얼굴 다 나왔어!” 그러고는 점원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쏘아붙였다. “당신도 정신 똑바로 차려. 이 팔찌를 그 여자한테 넘기고 싶으면 넘겨봐. 하지만 그날로 당신은 끝이야. S시에서나 Z국 이 바닥에서는 다시는 일 못할 거라고!” 그 말에 직원은 순간 굳어버렸다. 두 눈으로 하지민을 확인하고 순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뉴스에서 본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녀가 차건우와 관련된 루머의 주인공이었다는 걸 금세 알아챘다. 하지만 자신은 단지 월급을 받는 일반 직원일 뿐 이런 재벌가 사람들과 맞서 싸울 힘 따윈 없었다. 하지민은 옆에서 말리는 척하며 조용히 말했다. “수아야, 그만하자.” “아니 꿈틀대는 벌레한테 자꾸 물리니까 이 모양이지! 넌 너무 착해서 항상 당하는 거야. 오늘은 내가 대신 본때를 보여줄게!” 그 말에 서아라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 “나를 가르치려면 그 전에 자격부터 갖춰요.” 그러고는 하지민과 윤수아를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어 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매장 전체가 들을 수 있게 말했다. “차 대표님의 연인이 갖고 싶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누가 먼저 봤든, 누가 먼저 사려했든 무조건 양보해야 하는 거예요? 세상 어디나 ‘고객은 왕’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여긴 뭐예요? 고객이 노예예요? 태성 그룹이란 데는 원래 이런 식으로 장사하나요? 앞으로 태성 그룹 계열 매장에서 물건 사실 분들은 꼭 명심하세요. 괜히 마음에 들었다가 차씨 가문 사람들 심기라도 건드리면 Z국에서 발붙이고 살기도 힘들어질지 모르거든요?” 서아라의 말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었다. 말 한마디로 하지민과 윤수아를 매장 안의 모든 사람과 대립하는 위치에 세운 셈이었다. 주변에 있던 고객들과 직원들 모두, 노골적인 불쾌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쏘아보았다. 여기까지 와서 물건을 살 수 있는 손님이라면 하나같이 보통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표정 하나, 한마디 말이 시장에 미칠 파급력은 절대 작지 않았다. “요즘 태성 그룹이 잘 나가긴 한다지만 아직 독점 기업은 아니잖아. 지금부터 이렇게 오만하게 굴면 나중에는 우리 보고 무릎 꿇고 사라고 할 기세네.” “그래, 굳이 여기서 안 사도 돼. 딴 데 가면 되지. 난 오늘 당장 옆에 있는 도한 주얼리로 간다.” “얼마 전에 태성 그룹과 대진 그룹이랑 손잡았다더니 이제는 뭐라도 된 줄 아나 봐.” “앞으로 여기선 절대 못 사겠다. 내가 고른 물건, 누가 와서 ‘이 사람 거예요’ 하면 뺏기게 생겼네.” “우리 아버지도 내일 태성 그룹이랑 미팅 있는데 이 얘기 꼭 해드려야겠다. 이런 기업 태도로는 협상이고 뭐고 말도 안 돼.” 잠시 사이 사람들의 수군거림이 매장 전체를 휘감았고 곧 싸늘한 시선이 하지민과 윤수아를 향했다. 서아라는 두 사람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하지민 씨, 윤수아 씨. 혹시라도 내일 태성 그룹 주가가 떨어진다면 그건 다 두 분 덕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 말에 하지민과 윤수아의 얼굴이 일제히 창백해졌다. 그들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 일이 정말로 회사 이미지에 악영향을 주게 된다면 제일 먼저 등을 돌릴 사람은 차건우도 아닌 바로 이명희라는 것을. 그리고 차건우가 자신의 곁에 설 이유 역시 완전히 사라질 것이다. 하지민은 이미 머릿속으로 어떻게든 책임을 피할 방법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매장 전체가 웅성거리던 그 순간, 2층에서 한 남자가 천천히 내려오기 시작했다. 또렷한 이목구비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슈트, 묵직한 분위기 속에서도 단번에 시선을 압도하는 아우라. 그가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매장 안의 소란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남자는 이마를 살짝 찌푸리며 낮고 단단한 목소리로 물었다. “무슨 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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