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극한의 고통과 뼈를 갉아먹는 듯한 후회 속에서, 한 가지 생각이 집착처럼 떠올랐다.
‘하린이를 찾아야 해.’
그 생각 하나만이 한서준이 지금 당장 무너져 쓰러지지 않게 붙잡아 주는 마지막 버팀목이었다.
반드시 찾아야 했다.
한서준은 멀리서 윤하린의 얼굴만 한 번 보는 것이라도 좋았다.
‘그저 어디선가 잘 살고 있다는 것만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미 너무 늦어 버린 한마디, 가볍게 들리지만 한서준은 누구보다 무겁고 절실한 그 한마디를 하고 싶었다.
“미안해.”
그 한마디라도 입 밖으로 꺼낼 기회만 있다면, 한서준은 무엇이든 감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서준은 파산 정리에 묶이지 않은 마지막 재산들을 정리해 팔았다.
백화점 VIP실에서 맞춘 초고가 슈트도 아니었고, 대표들만 초대된 자리에서 받은 기념패도 아니었다.
손목에 걸려 있던 마지막 파텍필립 시계 한 점, 한때 취미라고 자신을 위로하며 모았던 한정판 미술 작품 몇 점이 전부였다.
그 모든 것을 처분해 간신히 영국 런던으로 향하는 편도 이코노미석 항공권 한 장을 손에 쥐었다.
그리고 모래밭에서 바늘을 찾는 것과 다름없는 수소문 끝에 겨우 알아냈다.
윤하린이 런던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주소 하나가 전부였다.
그 주소를 손에 쥔 순간, 한서준은 가장 이른 시간대의 비행기부터 끊었고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주철 대문 앞에 서서 한서준은 철문 사이로 안쪽을 들여다봤다.
안에는 잘 손질된 작은 정원과, 따뜻한 주황빛 불이 새어 나오는 창문 하나가 보였다.
그 불빛은 예전에 윤하린이 별장에서 한서준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늘 켜 두던 스탠드 조명과 너무도 닮았었다.
여기가 정말 윤하린의 집인지, 아니면 단지 우연히 지나치게 된 낯선 집인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한서준은 차마 초인종을 누르지 못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다리는 이미 감각을 잃어 갈 만큼 얼어붙었지만 한서준은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딸깍.”

링크를 복사하려면 클릭하세요
더 많은 재미있는 컨텐츠를 보려면 웹픽을 다운받으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
카메라로 스캔하거나 링크를 복사하여 모바일 브라우저에서 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