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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나는 손을 뻗어 막아 볼 틈도 없었다. 날카로운 브레이크 소리와 유리가 산산이 부서지는 굉음 속에서, 세상이 통째로 뒤집힌 것 같았다. 머리가 옆 유리창에 세게 부딪치는 순간, 치밀어 오른 통증과 함께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서준아...” 나는 반사적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한서준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눈에 들어온 건 전혀 다른 장면이었다. 한서준은 거의 반사적으로 정초아를 온몸으로 끌어안고 있었다. 한서준의 넓은 등이 정초아를 감싸며 튀어 오르는 유리 파편들을 죄다 대신 맞고 있었다. 불에 데는 듯한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오면서, 의식이 몇 번이고 아득하게 꺼졌다 켜졌다 했다. 사고 지점이 병원과 가까웠기 때문인지, 곧바로 구급대가 도착했다. “지금 구급차 한 대밖에 없습니다. 우선 한 사람부터 먼저 이송해야 합니다!” 구급대원이 다급하게 소리치며 우리 셋을 번갈아 훑어보았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한서준의 몸이 순간 굳어 버렸다. 한서준은 품에 안긴 채 몸을 떨고만 있는 정초아를 내려다보고, 다시 이마에서 피가 줄줄 흐르는 나를 힐끔 스쳐보았다. 제대로 앉아 있기도 힘든 내 꼴을 한 번 훑어보았다. 그 짧은 망설임이, 무딘 칼날이 되어 내 가슴을 천천히 갈라놓는 것 같았다. “정초아부터 데려가요.” 마침내 한서준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낮게 깔려 있었고, 마치 스스로에게 이유를 들이밀듯 덧붙였다. “정초아는 지금 정신 상태가 너무 불안정하니 당장 진정시켜야 합니다. 윤하린 쪽 상처는... 제가 우선 간단하게 처리하면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가장 그럴듯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 한마디에 내 몸에서 마지막 남은 기운까지 쓸려 나가 버렸다. 정초아는 한서준의 품 안에서 고개를 아주 조금 옆으로 기울였다. 어깨 너머로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두려움이 한 톨도 없었다. 대신 승리를 이미 확신한 사람의 노골적인 미소만이 입술 끝에 걸려 있었다. 정초아는 우리 셋만 겨우 들을 수 있을 만큼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한서준, 두고 봐. 나 절대 이대로 끝내지 않을 거야. 네 와이프랑 네 가족들... 다 똑같이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 나는 한서준이 바로 정초아를 밀쳐낼 거라고 생각했다. 최소한 화라도 낼 줄 알았다. 그런데 한서준은 잠깐 나를 힐끔 보더니, 내가 이미 정신이 흐려져 아무것도 못 보고 있다고 믿는 듯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고개를 휙 숙여, 정초아의 붉은 입술을 거칠게 키스했다. 입술이 격하게 맞부딪히는 사이, 나는 낮게 갈린 한서준의 목소리를 들었다. “어디 해 볼 테면 해 봐.” 그 한마디가 귓가를 때리는 순간, 내 마음속 어딘가에서 무언가 완전히 부서져 내리는 소리가 났다. 얼음 같은 절망과 숨이 막히는 듯한 답답함이 한꺼번에 목까지 차올랐다. 결국 눈앞이 새까맣게 가려지면서, 의식이 깊은 어둠 속으로 곤두박질쳤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코끝에는 싸한 소독약 냄새가 가득 배어 있었다. 이마의 상처는 깔끔하게 꿰매져 있었지만, 가슴 한가운데의 통증은 오히려 더 또렷해져 있었다.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머리맡을 더듬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떨리는 손가락으로 112의 숫자를 꾹꾹 눌렀다. 이번만큼은 반드시 내가 당한 일을 바로잡고 싶었다.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윤하린!” 핸드폰은 손에서 그대로 툭 채였다. 침대 옆에 서 있던 한서준이 전화를 거칠게 끊어 버렸다. 눈빛에는 싸늘하고 사나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 “신고하지 말라고 했지.” “이건 살인 미수야!” 나는 흥분 때문에 머리가 핑 돌았고 목소리는 갈라져 나갔다. “언제까지 저 여자를 감싸 줄 거야?” “내가 어떻게 처리하든 그건 내 일이야.” 한서준의 말투는 일말의 여지도 없는 일방적인 선언에 가까웠다. 그리고 곧바로 나를 얼어붙게 만드는 조건을 하나 내밀었다. “잊지 마. 너희 엄마는 아직 병원에 있어. 다음번 치료비에다가 해외에서 들여오는 특효약 가격까지 합치면, 만만한 돈이 아니야.” 나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굳어 버렸고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한서준을 바라보았다. 한서준은 내 엄마의 목숨을 두고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병실 밖, 복도를 스쳐 지나가는 정초아의 그림자가 유리창 너머로 어렴풋이 비쳤다. 그 순간 한서준의 시선이 잠깐 그쪽으로 향했다. 억지로 억누르고 있는 듯한 분노 아래에서 미친 듯한 집착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그대로 보였다. 한서준이 병실을 나간 뒤, 나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겨우겨우 침대에서 내려와 바람이라도 쐬자는 생각으로 복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가 사람이 거의 드나들지 않는 비상계단 앞을 지나치던 순간, 안쪽에서 새어 나오는 낮고 끈적한 숨소리에 발걸음이 멈췄다. 문은 완전히 닫히지 않았고 아주 조금 벌어져 있었다. 문틈 사이로 안을 들여다본 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비좁은 계단 끝에 정초아가 거칠게 밀쳐져 있었다. 정초아의 옷은 흐트러져 있었고 붉게 달아오른 뺨 위에는 오히려 도발적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한서준... 널 꼭 후회하게 해 줄 거야. 네가 제일 아끼는 건, 전부 다 없어져 버릴 거고.” 정초아는 쉬어가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말했다. 한서준은 그런 정초아를 벽에 깊이 짓누른 채,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두고 보자.” 말과 동시에 한서준의 동작은 더 거칠어졌다. 순식간에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고 나는 통제할 수 없을 만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한서준이 말하던 처벌이라는 게, 결국 이런 방식이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 속이 심하게 뒤집혔다. 강한 구역질이 목까지 치밀어 오르자, 나는 황급히 몸을 돌려 그 자리를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다시 병실로 돌아와 문을 꽉 닫고 차가운 문짝에 등을 기대었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까지 어딘가 남아 있던 미련이, 그 순간 완전히 부서져 재가 되어 버렸다. 나는 이곳을 떠나야 했다. 나는 엄마와 함께 이 숨 막히는 지옥 같은 곳에서 완전히 도망쳐 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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