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나는 엄마에게 달려가 이미 싸늘해진 손을 꽉 움켜쥐었다. 살을 에는 냉기 때문에 순식간에 온몸의 피가 얼어버린 것 같았다.
“엄마!”
가슴이 찢어지는 울음이 고요한 병실을 메웠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거대한 슬픔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자, 이상할 만큼 차갑고 평온한 느낌이 들었다.
나는 급히 달려온 주치의를 노려보듯 똑바로 바라보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 CCTV를 보여 주세요.”
CCTV 실에서 화면을 보는 순간, 눈앞이 확 붉어졌다.
정초아의 요염한 얼굴이 귀신처럼 중환자실 문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초아는 간병인을 교묘하게 피해 병실 안으로 슬그머니 몸을 숨겼다.
몇 분 뒤, 정초아는 단정하게 소매를 다듬으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병실을 나왔다. 정초아의 입가에는 희미한 미소까지 걸려 있었다.
‘정초아였어. 정말 정초아가 한 짓이야.’
나는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꺼내 한서준에게 전화를 반복해서 걸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차갑게 울리는 통화 중 신호뿐이었다.
휴대폰을 부숴 버리고 싶어질 즈음, 모르는 번호 하나가 화면에 떴다.
전화받자마자 귓가를 찢는 듯 비틀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윤하린, 이제 좀 아프지? 내가 뭐라고 했어? 한서준이 나를 이렇게까지 짓밟았으니까, 나도 한서준 옆에 있는 인간들 전부 다 망가뜨릴 거라고 했지? 이건 시작일 뿐이야.”
휴대폰 너머로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어렴풋이 섞여 들렸다. 그 익숙한 숨소리가 누구 것인지,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붙들고 있던 이성이 그 자리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정초아, 반드시 죗값을 치르게 할 거야!”
나는 앞뒤 가릴 것 없이 가장 가까운 경찰서로 뛰어갔다.
그동안 모아 둔 모든 증거, 교통사고에 의한 살인미수와 고의 상해, 그리고 이번에 찍힌 또렷한 살인 장면까지 모조리 제출했다.
경찰서 대기 의자에 앉은 나는 영혼이 빠져나간 석상처럼 꼼짝도 하지 못한 채, 범인이 법의 심판을 받는 순간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꼬박 두 시간이 지나도록 내가 마주한 것은 싸늘한 표정으로 경찰서를 들이닥친 한서준 뿐이었다.
한서준은 곧장 내 앞에 와 섰다. 목덜미에는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붉은 자국이 어른거렸다. 한서준은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일은 내가 다 정리해 놨어. 경찰 쪽에서도 정초아를 며칠 유치장에 둘 거야. 정초아가 원래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서...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일을 저지를 줄은 나도 몰랐어.”
“정신 상태가 불안정해서?”
나는 벌떡 일어나 한서준의 말을 울먹이며 끊어 버렸다.
“한서준, 도대체 언제까지 정초아를 감쌀 거야? 아직도 사랑하니까 그렇지? 사람을 죽여도 두둔할 만큼 사랑하니까!”
“입 다물어!”
한서준이 갑자기 울컥 성을 내며 내 손목을 거칠게 움켜잡았다. 그러자 뼈가 부서질 것처럼 통증이 번졌다.
“윤하린, 누가 네 멋대로 그런 소리를 지껄이래? 내가 정초아를 사랑한다고? 웃기지 마. 나는 차라리 정초아를 갈가리 찢어 버리고 싶어!”
핏발이 선 눈과 일그러진 표정은 무서울 만큼 광적이었지만 그 격한 분노 아래 숨겨진 당황과, 들켜 버린 한서준 특유의 초조함을 나는 분명히 알아챘다.
“그럼 왜 매번 정초아 편만 드는 거야? 이렇게 분명한 CCTV 영상까지 있는데, 왜 고작 며칠만 가둬 두겠다는 거야? 네가 말한 갈기갈기 찢어 버리겠다는 게 이 정도야?”
눈물이 앞을 가렸지만 나는 고개를 바짝 들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본 한서준은 잠시 숨을 멈춘 듯 굳어 섰다. 손목을 잡은 힘이 조금 느슨해졌다.
한서준은 크게 숨을 들이쉬며 억지로 감정을 가라앉히더니 정장 안주머니에서 서류 한 장을 꺼내 내밀었고 목소리는 여전히 딱딱했다.
“이미 벌어진 일이고 네 엄마 일은 분명 정초아가 한 게 맞아. 약도 사 오고, 산소호흡기도 뽑았다는 건 나도 다 알고 있어. 하지만 나하고 정초아 사이에는 아직 끝내지 못한 일이 남아 있어. 그래서 정초아를 지금 당장 무너뜨릴 수는 없어. 이 바닷가 별장은... 네 엄마 일에 대한 내 보상이라고 생각해.”
‘보상? 차가운 집 한 채로 엄마의 목숨을 대신하겠다고?’
나는 한서준의 번듯한 얼굴을 바라보며,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역겨움만 느꼈다.
나는 그 서류를 거칠게 낚아채 온 힘을 다해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잘게 찢긴 종잇조각을 한서준의 얼굴을 향해 힘껏 내던졌다.
눈발처럼 흩날리는 종잇조각들 사이에서, 나는 이를 악물고 또박또박 말했다.
“한서준,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아. 나는 정초아가 엄마의 피값을 치르는 것, 그것만 원해.”
한서준은 바닥에 흩어진 종잇조각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얼굴 위로 스쳐 지나가는 감정이 놀라움에서 어둡게 가라앉더니, 끝내 내가 읽어낼 수 없는 복잡한 표정으로 뒤엉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