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한서준의 영향력은 상상 이상이었다.
한서준은 주변 사람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곧바로 경호원들에게 나를 차에 태우라고 지시했다. 결국 나는 강제로 한씨 가문의 저택으로 끌려갔다.
“이번 일은 정초아가 선을 넘은 건 맞아.”
넓은 서재에서 한서준이 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온기라고는 한 톨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네가 내 말을 어기고 멋대로 경찰에 신고한 건 잘못했어. 넌 내 복수 계획을 깨뜨렸어.”
나는 그 말에 온몸이 싸늘해졌다.
“네 복수 계획? 지금 말이 돼? 한서준, 그건 내 엄마야. 내 엄마가 죽었어! 네 전처한테 살해당했다고!”
“내가 원하는 복수는 정초아가 천천히, 조금씩, 모든 걸 잃게 만드는 거야.”
한서준은 내 절규 따위는 아예 듣지 않았고, 짜놓은 계획이 틀어진 데 대한 불쾌함만 눈에 가득 담았다.
“그런데 네가 그 판을 깨 버렸지. 한씨 가문에서 내 뜻을 어기는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해.”
한서준이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자 경호원 두 명이 곧장 다가와 내 양팔을 거칠게 붙들었다.
“뭐 하는 거야, 한서준!”
나는 미친 사람처럼 발버둥 쳤다.
그 순간, 두려움 때문에 숨이 꽉 막혔다.
한서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천천히 내 앞으로 걸어왔다. 차디찬 손가락 끝으로 내 턱을 들어 올리며 새까맣게 가라앉은 눈을 마주 보게 했다.
“조용히 벌을 받아. 이번 일은 평생 잊지 못하게 될 거야. 저 사람들 말 들으라고. 뒷산 독사 우리로 데려가.”
독사 우리.
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한씨 가문 저택 뒤편 산자락에는 말 안 듣는 사람들을 처리할 때 쓰려고 독사를 가둬 둔 구역이 실제로 있었다.
설마 그곳에 나를 보낼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서준, 너 제정신이야? 당장 놓으라니까!”
나는 울부짖으며 있는 힘을 다해 버텼지만, 다음 순간 경호원들에게 팔이 완전히 고정돼 버렸다.
그들은 내 팔을 거칠게 잡아 끌며 뒷산으로 향했다. 자갈이 팔과 다리를 긁어 뜯어 살이 화끈거릴 만큼 아팠고, 이내 나는 축축한 바람이 스며드는 어두운 구덩이 안으로 내던져졌다.
입구 쪽 희미한 불빛이 깜빡이고 있었고 그 탓인지 오히려 다른 감각은 더 예민해졌다.
발밑과 바위 틈 사이로 갖가지 색의 뱀들이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는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
“스스...”
혀를 날름거리며 내뿜는 소리가 마치 죽음을 세는 초침처럼 들려왔다.
극한의 공포에 나는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피가 한순간에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 밀려왔고, 눈앞이 새까맣게 가라앉더니 의식이 뚝 끊어졌다.
...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병원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짙은 소독약 냄새가 코를 찌르자 구역질이 치밀었다.
문 밖에서 간호사들 목소리가 낮게 오가는 게 들렸다.
“그래도 한 대표님이 일찍 발견해서 금방 데리고 와서 다행이에요. 근데 아무리 그래도, 부인을 그런 데 보내실 수가 있나...”
다른 간호사가 더 낮은 목소리로 받았다.
“박 비서 말로는 정초아 씨가 출소할 때도 한 대표님이 직접 데리러 갔다고 하더라고요. 애초에 윤하린 씨의 어머님이 입원해 있는 병원 주소를 알려준 것도 한 대표님이라던데...”
한 마디, 한 마디가 독침처럼 내 심장에 박혔다.
결국 엄마의 산소호흡기가 뽑힌 것조차, 정초아에게 일을 시키고 방조한 한서준의 계획이었다는 뜻 아닌가.
병실 문이 열리고 한서준이 들어왔고,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이 얼굴에 얹혀 있었다.
“깼어? 어디 불편한 데 없어?”
나는 그 가식적인 얼굴을 바라보며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았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한서준의 얼굴에 잠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쳤다. 막 입을 떼려는 순간, 한서준의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를 받은 한서준의 목소리가 단번에 급해졌다.
“뭐라고? 정초아가 나왔다고? 지금 바로 갈게.”
한서준은 나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은 채 그대로 병실을 나가 버렸다.
거의 동시에, 내 휴대폰도 울렸다. 발신자는 정초아였다.
“윤하린, 교도소 밥이 생각보다 괜찮더라?”
달뜬 목소리는 노골적인 승리감으로 가득했다.
“한서준이 날 고생하게 둘 리가 없잖아? 교도소 방도 꽤 그럴듯하게 꾸며 줬더라니까. 한서준이 내가 아직도 자기를 사랑한다는 걸 알고 있고, 나도 한서준이 아직 나를 사랑한다는 거 알거든. 근데 그래서 뭐가 어쩔 건데?”
정초아의 목소리가 한층 낮아졌다.
“한서준이 예전에 우리 부모님 무덤까지 파헤쳤잖아? 그럼 나는 지금 네 엄마 시신을 토막 내서 개밥으로 줘도 하나도 안 미안하거든.”
그 순간, 뚝 하고 통화가 끊겼다.
머릿속이 웅 하고 울리며 새하얘졌다.
차갑게 식어 가던 엄마의 몸, 아빠가 세상을 떠난 뒤 엄마와 단둘이 버티며 살아왔던 세월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나는 손등에 꽂힌 주삿바늘을 거칠게 뽑아냈다.
그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병원 밖으로 내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