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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정초아가 남긴 말 속에서 단서를 잡은 나는 미친 사람처럼 도시 서쪽에 있는 묘지로 내달렸다. 역시나 정초아는 엄마 묘비 앞에 서 있었다. 얼굴에는 잔인할 만큼 차가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 “꺼져! 우리 엄마 건드리지 마!” 나는 그대로 달려가 있는 힘을 다해 정초아의 뺨을 후려쳤다. 정초아는 비틀거리며 한발 물러나더니, 볼을 감싸 쥔 채 오히려 더 미친 사람처럼 웃어 댔다. “윤하린, 너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등 뒤에서 한서준의 고함이 날아왔다. 한서준은 성큼성큼 달려오더니 나를 거칠게 밀쳐 버렸다. 힘이 얼마나 세던지 그대로 땅바닥에 나동그라졌다. 한서준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정초아를 부축해 세우고, 어디 다친 곳이 있는지 없는지 얼굴을 꼼꼼히 살폈다. 그리고서야 나를 돌아봤다. 눈동자에는 활활 타오르는 분노만 가득했다. 한서준의 손바닥이 번개처럼 날아와 내 뺨을 세게 갈겼다. “짝.” 얼굴이 활활 타오르듯 아팠지만 이미 가슴은 오래전에 다 타 버린 재처럼 아무 느낌도 없었다. 정초아는 한서준의 품에 바짝 기대서 서 있었다. 정초아는 승리자라도 된 듯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나를 향해 입 모양만 똑똑하게 내보였다. ‘일부러 그런 거야. 바보.’ 핏발 서린 눈으로 나를 노려보던 한서준은 이를 악물고 한 글자씩 짜내듯 말했다. “윤하린, 나 분명 말했지. 난 내 계획을 망가뜨리는 행동이 제일 싫다고.”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고 마치 영역을 침범당한 짐승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정초아는... 나만 괴롭힐 수 있어. 네가 뭔데 감히 손을 대?” 한서준은 언제 긁혔는지도 모를 얕은 상처 하나를 보고서도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정초아의 팔에 가느다란 긁힌 상처를 확인하자마자, 정초아를 번쩍 안아 들고 병원 쪽으로 허둥지둥 뛰어갔다. 나는 차가운 흙바닥 위에 혼자 누운 채, 잿빛으로 내려앉은 하늘만 멍하니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더 이상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때 휴대폰이 진동했다. 서진수 변호사에게서 온 문자였다. [윤하린 씨, 이혼 조정 기간이 모두 끝났고 서류 처리도 방금 마무리됐습니다.] ‘잘 됐어.’ 정말 기가 막히게 딱 맞는 타이밍이었다. 나는 천천히 일어나 옷에 묻은 흙먼지를 털어냈다. 미리 챙겨 두었던 캐리어 손잡이를 다시 꽉 쥐고 가장 빠른 시간대의 해외행 비행기표를 바로 예매했다. 공항 대기실 의자에 앉아 탑승 시간을 기다리는데, 잠시 꺼 뒀던 휴대폰 화면이 또다시 켜졌다. 한서준에게서 온 문자였다. 나를 때린 건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해서였고 지금까지 한 모든 짓은 나중에 정초아에게 더 큰 복수를 하기 위한 큰 그림이었다는, 앞뒤 안 맞는 변명이 장황하게 이어졌다. 나는 내용을 끝까지 읽을 필요도 느끼지 못했다. 그냥 유심 카드를 뽑아 손안에서 잠깐 굴려 보다가, 옆에 있던 쓰레기통에 툭 던져 넣었다. 이제까지의 모든 일은, 이곳에 다 두고 가는 편이 나았다. 나는 출국장 앞에서 여권과 탑승권을 직원에게 내밀었다. 직원이 서류를 확인하고는 나를 한 번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윤하린 씨, 방금 이혼 신고 마치신 건가요?” 나는 짧게 숨을 내쉬고, 어쩐지 마음 깊은 곳까지 비워지는 것 같은 미소를 지었다. “네. 방금 막 이혼했어요.” 그 대답을 끝으로 나는 서류를 돌려받았다. 휴대폰 전원을 완전히 꺼 둔 채, 탑승구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번에 나는 단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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