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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마지막 기회

고태겸은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올리더니 심재이의 허리에 살포시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천천히 힘을 주기 시작했다. 심재이는 허리에 둘러진 그의 팔에 멍하니 있다가 온기가 서서히 느껴지고서야 자신이 얼마나 대담한 행동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얼른 그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고태겸의 팔은 점점 더 세게 조여올 뿐 풀어주려는 기색은 조금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심재이는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마주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좀처럼 알 수 없는 눈동자였다. 두 사람 사이에 미묘한 공기가 감돌았다. 주위가 조용한 것이 침 삼키는 소리도 괜히 크게 들려왔다. 그때 가방 안에 든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려대며 분위기를 깨트렸다.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들어 수신 거절을 눌렀지만 이미 소리는 새어나간 뒤였다. “심재이, 좋은 말로 할 때 나와.” 고은찬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잔뜩 서려 있었다. 심재이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냉랭한 목소리로 외쳤다. “너랑 할 얘기 없어. 그리고 네 얼굴 보고 싶지도 않아.” 고은찬은 참아왔던 분노가 다시금 폭발하는 것을 느끼며 결국에는 또 화를 냈다. “당장 거기서 나와! 그리고 내가 보는 앞에서 유나한테 사과해. 아니면 평생 용서 안 할 줄 알아!” 심재이는 그의 말이 우습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물은 참 눈치가 없게도 금세 차오르고야 말았다. 그리고 그녀가 속상해하면 할수록, 눈물이 차오르면 차오를수록 고태겸의 얼굴은 점점 험악해져 갔다. 심재이는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꾹 참아내더니 목을 한번 가다듬고 말했다. “먼저 내 팔을 잡은 건 소유나 씨야. 난 사과 안 해. 그리고 네가 용서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야.” 고은찬은 그녀의 태연한 목소리에 이번에는 주먹을 꽉 말아쥐며 문을 쾅쾅 두드렸다. “나오라고 했어!” “대표님, 저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파요. 저 때문에 뭐라고 하지 마세요.” 소유나는 고은찬의 행동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더 가녀린 척을 하며 일부러 넘어질 때 생겼던 상처를 그에게 보여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고은찬은 상처를 보더니 눈이 더 뒤집혀 버렸다. “심재이, 마지막 기회야. 지금 당장 나와서 유나한테 사과해. 뺨을 때리고 바닥에 밀친 거 전부 다! 지금 나와서 사과하면 네가 행패 부린 거 봐줄게. 하지만 네가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그때는 너 다시는 안 봐.” 고은찬은 최후의 통첩을 내렸다. 그는 심재이가 뭘 두려워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그로서는 그녀에게 사과할 명분을 준 거나 다름없었지만 심재이에게는 그게 호의로 다가오지 않았다. 오히려 더 비참할 뿐이었다. 심재이는 주먹을 말아쥔 채 이를 꽉 깨물었다. 고은찬이 이런 말을 내뱉을 수 있는 이유가 뭔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더 사랑하는 쪽이 항상 지는 거라더니, 맞는 말이었다. 고은찬은 그녀가 그의 곁을 떠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여자를 감싸며 그녀에게 사과하라고 협박할 수 있는 것이다. 심재이의 눈에서 기어이 한줄기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미 새어버린 눈물샘이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참아보려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모습이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아름다웠다. 고태겸의 얼굴은 이미 싸늘해지다 못해 냉기가 뚝뚝 흘러내렸다. 심재이는 눈물을 닦아내더니 단호하고도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잘못한 거 없어. 사과도 안 할 거고 빌지도 않을 거야. 그리고 고은찬, 네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지 마. 우리는 이미 헤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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