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가까워진 거리
심재이는 얼른 뒤로 돌았다.
“삼촌이 왜... 여기 있어요?”
고태겸은 빨개진 그녀의 눈을 보더니 한층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누가 널 괴롭히기라고 했어?”
“아니요. 그냥... 그냥 눈에 뭐가 들어가서...”
심재이는 횡설수설하며 서둘러 눈물을 닦으려고 했다. 하지만 팔을 들어 올리려다가 상처 쪽을 건드려버리고 말았다.
역시 아까 소유나가 힘을 세게 준 바람에 상처가 벌어진 듯했다.
고태겸은 아무 말 없이 심재이의 앞으로 다가가더니 티슈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확 가까워진 거리에 심재이는 몸이 잔뜩 굳어버렸다. 고태겸 특유의 우드 향 향수가 그대로 온몸을 휘감는 듯했다.
‘이건 좀... 너무 가깝지 않나?’
“제, 제가 할게요.”
심재이는 한 발 뒤로 물러서며 그의 손에 든 티슈를 집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고태겸에게 손을 잡혀버리고 말았다.
“이대로 피를 뚝뚝 흘린 채로 나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손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심재이는 티슈 너머로 느껴지는 그의 온기에 괜스레 얼굴이 빨개지는 것 같았다.
고태겸은 눈물을 계속 닦아주다가 대뜸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고은찬이 괴롭혔어?”
심재이는 잠깐 멈칫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정말 눈에 뭐가 들어가서...”
“심재이, 거짓말을 할 거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부터 어떻게 하고 말해.”
역시 그는 거짓말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심재이는 입술을 깨문 채 천천히 시선을 내렸다. 고은찬과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떠벌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물며 고태겸은 고씨 가문 사람이라 말해봤자 고은찬의 편을 들어줄 게 분명했으니까.
“개인적인 일이라 말하고 싶지 않아요.”
심재이는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꼭 알아야겠다면?”
고태겸은 그렇게 말하며 갑자기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로써 두 사람의 거리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그의 목소리는 무척 평온했지만 기세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꼭 금방이라도 그녀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심재이는 등 뒤가 바로 세면대라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의 손은 아직도 고태겸에게 잡혀있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아니면 고은찬이 아닌 다른 남자와 거리가 이토록 가까워진 건 처음이라 놀란 건지 그녀의 심장은 아까부터 미친 듯이 뛰고 있었다.
이 느낌을 굳이 말로 하자면 꼭 단단히 세워둔 마음의 벽을 누군가가 허물고 넘어오는 듯한 느낌이었다.
심재이는 당혹감을 애써 누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저희 거리가 불필요하게 가까워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걱정돼서 물어본 것뿐인데 혼자 무슨 상상을 한 거지?”
고태겸이 피식 웃으며 그녀의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이에 심재이는 자신이 오버했다고 생각해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때 그녀의 시야 속으로 한 쌍의 남녀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이거 놔주세요.”
“그럼 내 질문에 먼저 대답해.”
고태겸은 손을 놓아줄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였다.
남녀가 점점 가까워진 것을 본 심재이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그대로 고태겸의 손을 잡아당겨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잠그자마자 고은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재이, 너 화장실에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와.”
심재이는 고태겸이 문을 열려는 듯 손을 올리자 얼른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제지했다.
“열지 마세요! 지금은 고은찬 얼굴 보고 싶지 않아요.”
갑자기 품으로 달려든 그녀 때문에 고태겸은 완전히 굳어버렸다. 머리카락이 턱을 간지럽히고 은은한 샴푸 냄새가 그의 마음을 사정없이 어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