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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다른 남자의 품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심재이는 어미 따라다니는 새끼 강아지처럼 고은찬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그와 관계되는 일이라면 뭐든 나서려고 했다. 물론 그렇다고 다른 이들처럼 대놓고 사랑을 고백하고 마음을 드러냈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그를 대할 때는 고고한 척, 담담한 척만 했다. 원래 성정이 조용한 건지 그녀는 취미도 피아노를 치는 것이나 독서, 요리 같은 정적인 것들뿐이었다. 그래서 고은찬은 그녀와 함께 있으면 늘 무료하고 답답한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의 마음에 드는 것이 있다면 그가 뭘 하든 따라주고 대체로 얌전하다는 것이었다. 그런 심재이이기에 고은찬은 그녀의 이별 통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차피 잠깐 화가 난 것일 뿐일 테니까. 전처럼 작은 선물 같은 것을 해주면 금방 언제 화를 냈냐는 듯 다시 붙어올 게 분명했다. “분명히 이따 메시지 한 통 보내주면 바로 우리 집에 가서 해장국 같은 걸 끓여놓고 나 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 여자는 원래 너무 오냐오냐해주면 안 돼.” 고은찬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은찬이야. 이래야 연애할 맛도 나지.” “해장국을 끓여주러 직접 집까지 간다고? 부럽다.” 친구들의 말에 고은찬은 더더욱 어깨가 으쓱해져 소유나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오늘은 내가 사는 거니까 양주를 따든지 와인을 주문하든지 마음대로 해.” ... 심재이는 거의 도망치다시피 해서 호텔에서 뛰쳐나왔다. 원피스를 가득 물들인 피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눈길을 주며 자기들끼리 수군댔다. 심재이는 지금 고은찬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멀어질 생각밖에 없었다. 그래서 더 빨리 움직이려는데 그만 호텔로 들어오려는 남자와 부딪쳐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남자의 품에 폭삭 안겨버리고 말았다. “대표님!” 뒤따라온 남자의 비서는 그 모습을 보더니 서둘러 여자를 떼어내려고 했다. 실수인 척 달려드는 여자들이라면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봐왔었으니까. 그런데 팔을 잡아당겨 밀쳐내기도 전에 여자가 혼자 뒷걸음질을 치며 바닥에 쓰러져버렸다. 백현우는 순간 이게 뭐지 싶어 움직임을 멈췄다. ‘설마 대표님한테서 돈을 뜯어내려고 일부러 부딪친 건가?’ 생각을 마친 그는 서둘러 심재이를 향해 외쳤다. “이봐요. 그쪽이 먼저 부딪친 거니까 이상한 쇼하지 마시죠?” 고태겸은 입고 있던 흰색 셔츠에 피가 묻어버린 것을 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일부러 부딪친 건 아니에요.” 심재이는 그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고태겸은 여자의 목소리에 찌푸렸던 미간을 펴더니 대뜸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여자의 머리카락을 옆으로 쓸어넘기며 얼굴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심재이?” 기분 좋은 중저음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심재이는 힘겹게 고개를 들어 올리며 눈앞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왜 여기에...” 하지만 그녀는 한마디도 채 하지 못하고 그대로 기절해버렸다. 고태겸은 옆으로 쓰러지려는 그녀의 몸을 빠르게 받아들고는 그제야 피로 빨갛게 물든 그녀의 팔을 발견했다. 온화했던 눈동자가 한순간에 싸늘해졌다. “곧 결혼한다는 애가 왜 이런 꼴로 여기에 쓰러져 있어?” 비아냥인지 걱정인지 모를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다만 확실한 건 그의 기분이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는 것이었다. 고태겸은 말을 마친 후 당연하다는 듯이 그녀를 안고 몸을 일으켰다. 몸무게가 날이 갈수록 더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백현우는 무심하고 차가운 자신의 상사가 여자를 안고 있다는 것에 너무 놀란 나머지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확인해볼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 “대표님, 지금 이게 무슨...” “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지.” “네? 안 됩니다. 거래처와의 중요한 미팅이 남아있잖습니까. 만약 대표님께서 참석하지 않으시면 거래가 성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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