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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벌써 두 번째야

“그럼 필요 없다고 해.” 고태겸의 눈빛이 서늘하게 변했다. 그 모습을 본 백현우는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 말 없이 차 문을 열어주었다. ... 고은찬이 집에 도착한 건 새벽 3시쯤이었다. 그는 휘청거리며 문을 열고는 들어오자마자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심재이, 해장국 끓여놨어? 어디 있어? 나와.” 하지만 그의 부름에 모습을 드러낸 건 심재이가 아닌 집안의 상주 도우미였다. “도련님, 재이 씨는 집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고은찬은 그 말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곧바로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그녀에게 해장국 끓이라고 문자를 보낸 지도 벌써 2시간이나 넘었는데 아무런 답장도 와 있지 않았다. “하! 답장을 안 해? 네가 감히?” 고은찬은 휴대폰을 탁자 위에 던져버리고는 소파 위에 털썩 누웠다. “도련님, 침실로 옮겨드릴까요?” “됐어.” “그럼 해장국을 끓여드릴까요?” “됐으니까 귀찮게 말 걸지 말고 가.” 고은찬의 분노 섞인 말에 도우미는 즉시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 심재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다음 날 아침이었다. 병실 특유의 냄새에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창가 쪽에 보이는 기다란 남자의 인영을 본 그녀는 순간 기쁨과 안도감이 들었다. “은찬아.” 남자는 그녀의 목소리에 조금 움찔하더니 이내 뒤로 돌았다. 그러고는 조금 냉랭한 눈빛으로 심재이를 바라보았다. 역광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오늘따라 유독 더 인상이 날카롭고 어두워 보였다.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심재이는 저도 모르게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아... 삼촌이 왜 여기 있어요?” 그는 다름 아닌 고은찬의 작은 아버지, 고태겸이었다. 삼촌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녀와 나이 차이가 고작 다섯 살 밖에 차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은찬이 아니라서 실망했나 보지?” 고태겸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투로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그녀 곁으로 다가왔다. 고태겸의 그림자가 심재이를 완전히 에워싸듯 드리워졌다. 심재이는 고태겸을 존경하는 한편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순간 표정이 딱딱하게 굳을 뻔했지만 금세 다시 태연한 얼굴을 하며 말했다.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햇빛 때문에 잘 못 봐서 그런 거예요.” “심재이, 벌써 두 번째야. 네가 날 고은찬으로 착각한 게.” 고태겸의 목소리는 매우 차가웠다. 어쩐지 불만도 조금 섞여 있는 듯했다. 심재이가 고태겸이라는 사람과 처음 만나게 된 건 3년 전, 고은찬의 본가에서였다. 당시 그녀는 고은찬을 보러 갔다가 정원에 홀로 서 있는 남자의 뒷모습을 발견하고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눈을 가렸다. 스타일도 그렇고 몸매도 그렇고 고은찬이 확실했기에 다른 사람일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누구게?” 심재이는 간만에 애교 가득한 목소리로 남자의 귀에 속삭였다. 하지만 돌아온 건 고은찬의 맑은 목소리가 아닌 듣기 좋은 중저음이었다. “나는 고은찬이 아닌데?” 깜짝 놀란 그녀는 제자리에서 풀쩍 뛰다가 하마터면 뒤로 넘어질 뻔했다. 다행히 넘어지려는 순간 남자가 빠르게 돌아 그녀를 품에 와락 끌어당겼다. “고태겸, 이게 내 이름이니까 제대로 기억해.” 머리 위로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에 심재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 지나치게 잘생긴 얼굴과 딱 마주쳐버렸다. 고씨 가문에서 냉혈한이라고 소문난 사람, 그게 바로 고태겸이었다. 그에 관한 소문이라면 많이 들었었기에 심재이는 그날 이후, 최대한 그를 피해 다녔다. ‘실수 같은 걸 마음에 담아두는 타입인 줄은 몰랐는데... 그간 피해 다니길 잘했네.’ “죄, 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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