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반지와 사진
심재이는 시선을 내린 채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사과했다.
긴장한 나머지 이불을 꽉 쥐고 있는 그녀를 본 고태겸은 옅게 웃더니 대뜸 허리를 숙여 자신의 얼굴을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가져갔다.
“나는 얘기할 때 시선을 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고태겸은 그렇게 말하며 심재이의 턱을 잡아 살짝 들어 올렸다.
다시금 눈이 마주치자 심재이는 더더욱 몸을 굳히며 우왕좌왕했다.
“죄, 죄송해요.”
“뭐가?”
고태겸이 물었다. 한쪽 눈썹을 끌어올리며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인 모습은 그야말로 화보가 따로 없었다. 오른쪽 눈 아래에 있는 눈물점 때문에 사람이 더 차갑고 고고해 보이는 것 같았다.
심재이는 마른 침을 한번 삼키고는 최대한 침착한 태도로 다시 입을 열었다.
“다음에는 착각하는 일 없게 할게요, 삼촌.”
“네가 한 말이야. 지켜.”
고태겸은 경고성 말을 내뱉은 후 몇 초간 눈을 더 마주치고 나서야 천천히 몸을 바로 세웠다.
심재이는 협박이라도 받은 사람처럼 심장이 거세게 뛰었다.
‘그런데 이게 이렇게까지 화낼 일이야?’
“팔은 어쩌다 그렇게 된 건데?”
냉랭한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심재이는 순간 어젯밤 호텔에서 당했던 수모가 떠올라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왈칵 쏟아져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추태까지는 보일 수 없었기에 속상한 마음을 꾹 참으며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넘어졌어요.”
고태겸의 얼굴에 미세한 언짢음이 피어올랐다.
“병원에 데려다줘서 고마워요. 치료비는 제가 따로 송금해드릴게요. 저... 이제 혼자 있어도 괜찮으니까 가보세요. 바쁘시잖아요.”
심재이는 그렇게 말하며 애써 미소까지 지어 보였다.
고태겸은 그런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 말도 안 한 채 병실을 떠났다.
문이 닫히는 순간, 심재이도 이제는 한계인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고태겸은 병실 밖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며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대표님, 이제 회사로...”
“어젯밤에 심재이가 호텔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알아봐.”
막 도착한 백현우는 고태겸의 지시에 말도 잇지 못한 채 다시 뒤로 돌아야만 했다.
심재이는 어느 정도 울고 난 후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해장국 끓여줘.]
[심재이, 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왜 내 문자 무시해? 지금이라도 순순히 사과하고 우리 집으로 와서 해장국을 끓여주면 네가 한 짓 용서해줄게. 그러니까 기회 줄 때 빨리 와. 난 분명히 경고했어.]
심재이는 고은찬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속이 상하는 한편 우습기도 했다.
그녀가 10년이나 좋아했던 남자는 겨우 이런 남자였다. 고은찬은 늘 이렇게 모든 건 다 그녀의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심재이는 고은찬이라는 이름 옆에 붙여뒀던 하트를 지운 후 답장이 아닌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린아, 나 지금 병원인데 데리러 와 줄 수 있어?”
한 시간 후, 조아린의 차량 안.
“고은찬 그 미친놈이 너한테 그딴 말을 했단 말이야? 너 이번에도 그 인간 용서해주면 그때는 너랑 친구 안 할 테니까 그렇게 알아!”
조아린은 마치 자신이 수모를 겪은 것처럼 미친 듯이 분노했다. 그녀는 이미 오래전부터 고은찬을 고깝게 여기고 있었다.
심재이는 아무 말 없이 휴대폰을 들어 인스타를 훑어보았다.
소유나의 피드에 다이아몬드 반지가 끼워져 있는 손 사진과 웬 남자와의 입맞춤 사진이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