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화 사과
남자는 누가 봐도 고은찬이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생일. 늘 고맙고 사랑해.]
사진과 문구만 보면 그들이야말로 연인 같았다.
심재이가 원했던 반지는 결국 그녀의 손이 아닌 다른 여자의 손에 끼워졌다.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남자도 그녀의 곁이 아닌 다른 여자의 곁을 지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심재이는 휴대폰을 집어넣은 후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며 단호하게 말했다.
“헤어질 거야.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헤어질 거야.”
...
해성 엔터.
고은찬은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거의 5분에 한번씩 심재이에게서 온 답장이 없나 하고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하지만 끝까지 그녀에게서는 아무런 답장도 오지 않았다.
그 상태로 아침 일찍 회사에 출근한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심재이가 반 차를 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마음이 다시금 답답하고 짜증이 났다. 그러다 오후가 되어 심재이가 출근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에야 조금 가라앉았다.
‘그럼 그렇지. 네가 사과를 안 하고 배겨?’
고은찬은 그녀가 자신에게 사과하러 온 거라고 확신했다.
심재이는 집으로 가 옷을 갈아입고 조아린과 함께 점심을 마친 뒤에야 회사에 출근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출근하자마자 고은찬을 찾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의 사무실로 들어가 바로 일을 했다는 것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에 심재이는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말했다.
“네, 들어오세요.”
문을 활짝 열고 들어온 사람은 다름 아닌 고은찬이었다. 그 뒤로 소유나도 함께 따라 들어왔다.
고은찬은 평소와 달리 먼저 인사를 건네지 않는 건 물론이고 자리에서 일어나지조차 않는 심재이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의 책상을 쾅 소리 나게 내려쳤다.
“뭐 하는 짓이야?”
심재이의 얼굴은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고은찬은 그 얼굴에 더 열이 받은 건지 그녀의 손에 든 펜을 바닥에 홱 하고 던져버렸다.
“왜 사과하러 안 와?”
“내가 뭘 잘못했다고 너한테 사과를 해야 하는데?”
“너...! 너 어제 유나 때렸잖아!”
고은찬이 분개하며 말했다.
심재이가 출근했다는 소식을 들은 후 내내 기다렸는데 그녀는 30분이나 넘도록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뻔뻔한 얼굴로 아무런 잘못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
심재이는 고은찬의 말이 기가 막히기도 하고 우습기도 했다. 그녀는 시선을 뒤로 옮겨 당사자인 소유나에게 물었다.
“내가 소유나 씨한테 사과해야 합니까?”
“아, 아니요.”
소유나는 그녀의 눈치를 보며 조용히 답했다.
“저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사과를 요구해요...”
심재이는 차갑게 웃으며 다시금 고은찬을 바라보았다.
“그렇다는데? 멋대로 끼어들면 맞아도 싸다는 걸 소유나 씨도 잘 알고 있는 거지.”
그 말에 소유나의 안색이 조금 굳어졌다. 심재이가 이런 말을 대놓고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전에는 고은찬과 그녀 때문에 속상한 일이 있어도 늘 혼자 삼키곤 했으니까.
“심재이, 네가 애야? 대체 왜 이래?”
“나 지금 일하는 거 안 보여? 쓸데없는 말 할 거면 나가.”
고은찬은 냉랭한 태도의 그녀를 보며 끓어오르는 분노를 꾹 참은 채 마지막으로 침착하게 얘기했다.
“어제는 생일을 혼자 보내게 될 유나가 안쓰러워서 함께 있어 준 것뿐이야. 고작 그게 다라고.”
심재이는 가소로운 듯 헛웃음을 쳤다.
고작이라니, 3년을 기다려온 프러포즈를 자기 손으로 망쳐버려 놓고, 프러포즈 반지까지 다른 여자의 손에 끼워줘 놓고 고작이라니, 이게 정말 고작이라는 단어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인가?
더 비참한 건 팔을 다친 걸 뻔히 봤으면서 그에 대해서는 들어와서부터 지금까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의 마음속에 그녀라는 존재는 이미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설명 안 해도 돼.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니까.”
‘상관이 없어? 끝까지 이렇게 나오겠다 이거야?!’
고은찬은 이를 꽉 깨물더니 심재이를 내려다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이 사무실을 유나한테 양보해도 상관이 없겠네? 안 그래도 유나가 서류 가져다줄 때 멀어서 불편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