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화
이층 어느 방의 커다란 통유리창 앞에 서 있던 백도운은 무심히 아래에서 벌어지는 상황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의 잘생긴 얼굴 위에는 어떠한 감정도 스치지 않았고 마치 자신과 무관한 연극 한 편을 보는 듯 덤덤하기만 했다.
잠시 후 백도운은 미간을 꾹 눌러 문지르며 침실로 향했다. 그 순간, 한유설의 부드럽고 따스했던 손길이 문득 떠올랐다. 그녀의 손길은 확실히 그의 피로를 씻어 주었다.
같은 시각 일 층 현관에서는 한유설이 들고 있던 우산을 조용히 우산꽂이에 꽂아놓고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심코 복도를 지나던 그녀는 순간 발걸음을 멈추었다.
커다란 통유리창 앞에 심해원이 말없이 서 있었다.
길고 곧게 뻗은 체형에 정갈하게 차려입은 블랙 슈트, 차갑도록 단정한 얼굴이 실내조명 아래 더욱 선명히 빛났다. 심해원은 그저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그녀를 빤히 바라볼 뿐이었다.
한유설은 직감적으로 그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스로 다가간다면 혹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순간적으로 몸을 움찔했다.
‘역시 안 되겠어!’
한유설은 황급히 몸을 홱 돌려 마치 누군가가 자신을 뒤쫓아오기라도 하는 듯 필사적으로 자기 방을 향해 뛰었다.
방문을 닫고 나서야 그녀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조금 전 심해원이 자신을 바라보던 눈빛이 그녀의 기억 속 ‘그날’과 똑같았다.
한유설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심해원의 유혹에 자신이 무너졌던 그 두 번의 기억만큼은 절대 다시 떠올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애써 외면했던 기억은 그날 밤 꿈속에서 다시 찾아왔다.
꿈속에서 한유설은 마치 높은 곳에서 추락하는 듯 아찔한 감각을 느끼다 정신을 차렸다. 눈을 떴을 때 그녀는 어느 남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녀의 시선 앞으로 보인 것은 수많은 책들로 가득한 서재였다. 책상 위엔 가지런히 놓인 서류 더미와 노트북이 있었고 그녀를 품에 안은 남자는 왼손으로 서류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길고 섬세한 그의 손이 강렬하고 또렷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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