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허가윤의 비명에 민채원과 박씨 일가 가정부들이 몰려왔다. 문 앞은 순식간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격분한 허가윤은 침대에 누운 송서아의 목을 조르고 질식해 죽일 기세였다. 송서아는 차오르는 고통에 눈앞이 흐릿해졌다. 박유준은 저 멀리 내팽개쳐진 채 아직 상황 파악도 못 하고 멍하니 있었다. 그녀는 절망 어린 눈길로 박유준에게 말했다.
“살려줘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가 결코 박유준의 귀에 닿지 않았다.
다행히 이때 민채원이 사람들을 파헤치고 달려왔다. 송서아는 시어머니가 자신을 구하러 온 줄 알았지만 완전히 착각이었다.
그것도 아주 한심한 착각.
민채원은 조심스럽게 허가윤을 보호하며 말했다.
“가윤아, 너 아직 태아 상태도 불안정한데 이까짓 일로 무리하면 되겠어?”
송서아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다만 민채원은 오직 허가윤의 배를 감싸 안으며 그녀를 보호하는 데만 집중할 뿐, 송서아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었다.
슬픔과 절망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제 곧 기절할 것만 같을 때, 한참 넋 놓고 있던 박유준이 마침내 정신을 차리고 허가윤을 침대에서 안아 내렸다.
행여나 뱃속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봐 그녀를 꼭 껴안았다.
민채원도 박유준의 곁에 바짝 붙어 허가윤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의자에 앉혔다.
그러고는 잔뜩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가윤아, 괜찮아? 배는 좀 어때?”
송서아는 힘겹게 숨을 몰아쉬며 박유준을 넌지시 바라봤다.
다만 그의 시선은 온통 허가윤에게만 쏠려 있었다.
민채원의 말에 박유준은 정신을 번쩍 차리고 긴장한 얼굴로 허가윤을 바라보았다.
“가윤 씨, 괜찮아요?”
허가윤은 두 눈을 부릅뜨고 붉어진 얼굴로 송서아를 손가락질했다.
“하다 하다 아주버님까지 넘봐요? 동서처럼 파렴치한 여자는 난생처음이네요! 이 아이가 잘못되면 전부 동서 때문이에요!”
허가윤은 말하면서 울화가 치밀었는지 박유준의 품에 와락 안겨 대성통곡했다.
비통하고 처절한 절규가 울려 퍼지자 침실 문밖에서 지켜보던 가정부들이 송서아를 비난하기 시작했다.
“윤리에 어긋나는 일까지 저지르네요 둘째 사모님은. 그래도 전엔 항상 둘째 도련님께 충실하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신 지 얼마나 됐다고 어떻게 이런 짓을 벌인대요 그래?”
이때 민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침실 밖에 몰려온 가정부들을 내쫓았다.
“뭘 보고 있어? 돈 받고 집 청소나 잘할 것이지 다들 이렇게 한가해?”
가정부들이 흩어지자 침실 안팎은 마침내 조용해졌다.
하지만 허가윤의 슬픈 흐느낌은 유난히 귀에 거슬렸다.
울다 지쳤는지 그녀가 애처롭게 고개를 들고 박유준을 쳐다봤다.
“서준 씨, 동서가 먼저 유혹한 거 맞죠?”
허가윤은 어느덧 너무 울어서 두 눈이 벌겋게 부었다. 그 모습을 본 박유준은 마냥 속상할 따름이었다.
힘겹게 임신한 그녀, 이 아이만 무사히 태어나면 박유준도 모든 걸 끝내고 다시 송서아에게 돌아갈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시기에 아무런 문제도 일으켜선 안 된다.
그는 허가윤의 어깨를 토닥였다.
“가윤 씨, 화내지 말아요. 제수씨가 술에 취해 나를 그만 유준이로 착각했나 봐요.”
송서아는 이를 악물고 헛웃음을 지었다. 여전히 허가윤을 위로하는 저 인간.
술에 취해서 착각했다고?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편 허가윤은 박유준이 아무리 위로해줘도 좀처럼 화가 풀리지 않았다. 늘 자신을 옹호해주던 민채원을 바라보며 그녀가 또다시 애처롭게 말했다.
“어머님, 제가 이 아이 가지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아시잖아요. 왜 하필 이 시기에 저를 이토록 괴롭히는 거죠? 아이 못 지켜내면 저 원망하지 마세요. 몹쓸 짓을 꾸민 장본인을 탓해야죠!”
그녀는 의도적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송서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민채원 또한 눈치가 빠른 법이니 어떻게 하면 허가윤의 마음을 잘 달래줄지 너무 잘 알았다.
그녀는 팔짱을 끼고 불쾌한 표정으로 송서아를 바라보았다.
“서아야, 가윤이도 그렇게 옹졸한 사람이 아니야. 얼른 일어나서 사과하고 이번 일 없던 거로 해.”
송서아는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 입술은 창백했지만 기세는 전혀 밀리지 않았다.
그녀는 차갑게 웃으며 되물었다.
“사과요? 제가 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