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그녀는 아이보리색 터틀넥 니트에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머리는 느슨하게 틀어 올려 매끈한 이마와 아름다운 목선을 드러냈다.
담담한 표정으로 손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 있었는데 마치 의례적인 병문안 같았다.
김재현의 시선은 단 한순간도 그녀에게서 떨어지지 않고 마치 영혼에 새겨 넣으려는 듯 탐욕스럽게 바라봤다.
“하린아...”
그가 입을 열었다.
떨리는 목소리가 격정과 허약함이 섞인 채 들려왔다.
“무사해서... 다행이야... 정말... 다행이야...”
이하린은 병상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멈춰 과일 바구니를 옆 선반 위에 올려놓았다.
“김 대표.”
그녀가 차갑고, 철저히 사무적인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렇게 찾아온 이유는 상황을 말해 주기 위해서야. 나를 습격한 사람들은 이미 경찰에 체포됐고 배후도 밝혀졌어. 그러니 김 대표랑은 무관해. 이번 일에 도움을 준 건 고맙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 사라고 생각해.”
그녀의 입에서 나온 ‘김 대표’라는 호칭과 거리감 있는 말투에 김재현의 눈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난 네 감사 같은 거 원하지 않아!”
그는 급히 말하느라 흥분으로 숨이 가빠졌고, 상처가 당겨지며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이었어. 하린아... 난, 내가... 곧 죽을지도 몰라... 마지막으로 딱 하나만 부탁할게...”
그는 그녀를 바라봤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은 듯 비참할 정도로 간절한 눈빛이었다.
“한 번만... 한 번만 다시 날 ‘재현 씨’라고 불러줄 수 있어? 예전처럼... 그때처럼...”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죄수처럼 그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하린은 말없이 그를 바라봤다.
창백하고 수척한 얼굴, 붕대에 싸여 피가 번져 나온 어깨, 눈에 담긴 타인을 태워 버릴 듯한 고통과 구걸...
창밖의 빛이 조금 옮겨갈 만큼, 김재현의 눈에 남아 있던 그 마지막 희망의 불씨가 조금씩, 조금씩 꺼질 만큼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그녀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맑고 평온했으며 어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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