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이하린은 바닥에 주저앉아 두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시야를 흐리자 그녀는 얼굴을 감싸 쥐고 처절하게 울었다.
“사과할게...”
목소리가 힘겹게 새어 나왔다.
“생방송 할게... 제발 풀어줘... 풀어주라고...”
라이브 방송이 켜졌다.
카메라 앞에 앉은 이하린은 얼굴이 창백하고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화면엔 수많은 악플이 쏟아졌다.
[이하린 나왔다! 표절범!]
[뻔뻔하게도 방송을 켜네!]
[김 대표님 여친이라더니 이런 인간이었어?]
[표절로 뜬 거지 뭐!]
이하린은 입을 열었지만 목이 막힌 듯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말해.”
카메라 밖 김재현의 목소리는 얼음 같았다.
“강한별의 작품을 표절했다고.”
이하린은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시 눈을 떴을 땐 두 눈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저는...”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작았지만 또렷했다.
“강한별의 작품을 표절했습니다.”
댓글 창은 폭발했다.
[인정했다!]
[진짜 역겹다!]
[이딴 인간이 디자이너라고?]
이하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강한별의 재능을 질투해 디자인을 훔쳐서 제 작품인 척했습니다. 여기서 강한별과 저를 믿어준 모든 분께 사과드립니다...”
말이 끝나자 김재현이 다가와 방송을 껐다.
“이제 풀어줄 거지?”
이하린은 고개를 들고 이상하리만치 평온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
김재현은 전화를 걸었다.
“풀어...”
그때, 경호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 대표님! 큰일입니다! 이하린 씨의 오빠가... 숨이 없습니다!”
김재현의 얼굴이 굳었다.
“뭐라고?”
“차를 세웠을 때 이미... 끌려가다 사망했습니다...”
휴대폰이 바닥에 떨어졌다.
“무슨 일이야?”
이하린이 멍하니 물었다.
김재현은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미안해.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 그냥 방송으로 사과만 하게 하려던 거였는데 네 오빠가 이렇게 될 줄은...”
이하린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니, 이해했지만 뇌가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었어...”
김재현은 낮게 말했다.
“보상은 할게. 200억 더 얹어서...”
“김재현!”
이하린은 그를 밀치며 절규했다.
“돈 필요 없어! 내 오빠 돌려줘! 돌려달라고!”
그녀는 미친 듯이 밖으로 뛰쳐나갔다.
문 앞에 차 트렁크가 열려 있었는데 사람들이 피투성이가 된 무언가를 꺼내고 있었다.
아니, 무언가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그녀의 오빠, 이성민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녀를 지켜주던 오빠, 사탕을 사주고 학교에 데려다주던 따뜻한 오빠였다.
“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있잖아.”
그렇게 말하던 그 사람이 지금은 온몸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난 채 누워 있었다.
“오빠... 오빠...”
이하린은 무릎 꿇고 다가갔다.
손을 대고 싶었지만 감히 대지 못했다.
손은 부러졌고 다리는 기형처럼 뒤틀렸으며 얼굴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오빠...”
그녀는 그의 몸에 엎드려 통곡했다.
“일어나... 나 좀 봐... 나 하린이야...”
하지만 이성민은 다시는 눈을 뜨지 않았다.
“하린아...”
누군가가 불렀다.
이하린은 고개를 들고 어머니가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옷은 찢어지고 머리는 헝클어졌으며 얼굴엔 멍이 들어 있었는데 목 졸린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웃고 있었다.
예전처럼 집에 오라고 부르던 그 미소 띤 얼굴로 말이다.
“엄마...”
이하린은 일어서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없었다.
“하린아, 잘 살아.”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는 더는 함께할 수 없구나.”
“엄마... 무슨 말이에요?”
이하린은 온몸이 얼어붙었다.
“어디 가려는 거예요? 가지 말아요... 저에겐 엄마뿐이에요...”
“미안하다. 하린아...”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엄마는 이런 꼴을 당하고... 더는 살 수가 없어...”
“안 돼요... 엄마! 기다려요! 같이 가요! 여기서 떠나요!”
“괜찮아...”
어머니는 뒤로 물러났다.
그 뒤엔 높은 담장이 있었다.
“하린아, 안녕.”
“엄마!”
이하린의 눈앞에서 어머니는 담을 넘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
쿵!
피가 튀었다.
“엄마!”
이하린은 미친 듯이 달려가 어머니의 몸을 끌어안고 울부짖었지만 어머니는 조용히 누워 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목에서 피비린내가 치밀어 올랐다.
“웁!”
선혈 한 모금이 그녀의 입에서 갑자기 분수처럼 뿜어져 나와 앞의 바닥을 붉게 물들이고 그녀의 가슴 앞 옷까지 적셨다.
그녀는 이내 눈앞이 캄캄해지며 그대로 뒤로 쓰러져 의식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병원이었다.
눈을 뜬 이하린은 하얀 천장을 보았다.
“이하린 씨, 깨어나셨군요?”
침대 옆에는 김재현의 경호원이 검은 정장을 입고 서 있었다.
“의사 말로는 당분간 안정을 취하셔야 한대요.”
이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하린 씨의 오빠와 어머니는...”
경호원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두 분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장례는... 김 대표님께서 이미 사람을 보내 처리하셨습니다.”
이하린은 그를 바라보고 있었지만 얼굴엔 아무런 표정도 없었다.
“나갈래요.”
그녀가 말했다.
“김 대표님께서 몸부터 잘 추스르라고 하셨습니다.”
경호원이 그녀를 막아섰다.
“몸이 회복되면 계속해서 강한별 씨의 테스트를 도와야 합니다.”
이하린은 갑자기 웃었다.
너무 웃어서 눈물이 흐를 정도였다.
“테스트...”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섬뜩할 만큼 차가웠다.
“김재현이 도대체 어디까지 저를 몰아붙일 생각이래요?”
경호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하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보았다.
“김재현에게 전해 주세요. 그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김 대표님께서는 매우 바쁘셔서...”
“만나겠다고요!”
이하린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손에 닿은 물컵을 집어 바닥에 내던졌다.
“물어봐야겠어요! 제 오빠가 죽었고 우리 엄마도 죽었어요! 그 인간은 대체 뭘 더 원한대요? 저한테 뭘 더 하겠다는 거냐고요!”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이하린은 맨발로 침대에서 내려와 유리 파편을 밟았다.
피가 스며 나왔지만 그녀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이하린 씨! 진정하세요!”
“어떻게 진정하라는 거예요?”
이하린은 그의 옷깃을 붙잡고 눈을 시뻘겋게 뜬 채 외쳤다.
“우리 가족이 전부 죽었어요! 그 사람 때문에! 강한별의 그 미친 테스트 때문에! 그런데 저한테 진정하라고요?”
그녀는 처절하게 울며 온몸을 떨었다.
경호원이 그녀를 제지하려 했지만 이하린은 갑자기 손을 놓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 모습은 마치 버려진 아이 같았다.
“왜...”
그녀는 중얼거렸다.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경호원은 그녀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이하린 씨, 우선 쉬세요. 김 대표님께서 찾아오실 겁니다.”
그는 병실을 나갔다.
병실엔 이하린 혼자 남았다.
그녀는 바닥에 앉아 창밖의 햇빛을 바라보다가 문득 생각했다.
‘모든 게 아무 의미 없어. 사랑도, 미움도 전부 의미 없어.’
그녀의 모든 가족은 이미 사라졌다.
얼굴을 감싼 그녀의 손가락 사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지만 울어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김재현은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고 강한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녀에게 남은 유일한 방법은 살아남을 방법을 찾는 것뿐이었다.
이하린은 눈물을 닦고 휴대폰을 들어 한 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전화기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이하린.”
그녀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
“폭파 약 스무 톤이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