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바닥에 누운 이하린은 빗물과 피가 섞여 눈으로 흘러들어 오는 걸 느꼈다.
그녀는 서로를 껴안은 두 사람을 보다가 문득 3년 전을 떠올렸다.
김재현이 그녀를 대신해 칼을 맞았던 그 날, 병상에 누운 채 그녀의 손을 잡고 그가 말했었다.
“하린아, 무서워하지 마. 나 괜찮아.”
그때는 그가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알고 보니 전부 거짓이었다.
이하린은 눈을 감으며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
다시 깨어났을 때는 병원이었는데 그 후 며칠 동안, 이하린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김재현은 오지 않았지만 경호원을 통해 보약을 보내왔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을 빨리 낫게 해서 강한별의 테스트를 끝내려는 것뿐이라는 걸.
퇴원 날, 경호원이 그녀를 데리러 왔다.
“이하린 씨, 김 대표님께서 강한별 씨의 생일 파티에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하린은 아무 말 없이 차에 올랐다.
파티에서 강한별은 당연히 주인공이었다.
김재현은 그녀 곁을 지키며 목걸이를 걸어 주고, 케이크를 먹여 주었는데 눈빛은 물이 흐르듯 다정했다.
이하린은 구석에 서서 그 장면을 바라보며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 저거 이하린 아니야?”
강한별의 친구 몇 명이 다가왔다.
“지난번에 종일 한별을 시중들었다며?”
선두에 선 여자가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랬으면 이제 우리 좀 모셔야지.”
이하린은 상대하고 싶지 않아 돌아서려 했다.
“좋은 말로 할 때 안 해?”
빨간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화가 나 앞으로 나서 그녀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
짝!
이하린의 얼굴이 돌아갈 정도라 귀에서는 웅웅 소리가 났다.
“뭘 그렇게 고상한 척해?”
다른 여자도 밀쳐 왔다.
“도구 주제에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이하린은 반항하려 했지만 사람 수가 너무 많았다.
머리채를 잡히고 드레스가 찢어진 그녀는 완전히 망가진 모습이 되었다.
“그만해.”
그때 김재현의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다가온 그의 차가운 표정 때문에 주변 공기가 얼어붙었다.
여자들은 즉시 입을 다물고 이하린을 놓았다.
김재현의 시선이 이하린의 붉게 부은 얼굴과 어질러진 옷에 닿더니 아주 미세하게 미간을 찌푸렸다.
“재현아!”
강한별도 다가와 입을 삐죽였다.
“왜 저 여자 편을 들어?”
김재현은 시선을 거두고 그녀를 보며 말했다.
“다치면 테스트가 미뤄질 거잖아. 너도 알다시피 난 최대한 빨리 널 아내로 맞고 싶어.”
그는 방금의 불쾌함은 없었던 일처럼 다시 다정하게 강한별을 달랬다.
이하린은 더는 그들을 보지 않고 옷과 머리를 정리한 뒤 조용히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 속의 그녀는 뺨이 퉁퉁 부어 있었고 입가가 찢어졌으며 이마엔 아직도 붕대가 붙어 있었다.
그녀는 수도를 틀어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강한별이 화장실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그녀는 이하린의 뒤에 서서 거울을 통해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빛에는 조금의 숨김도 없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이하린, 방금 재현이 네 편을 조금 들었다고 해서 네가 특별해졌다고 착각하지 마.”
강한별은 새로 한 네일을 만지작거리며 가볍게 말했다.
“그 사람은 그냥 내가 벌이는 게임이 너무 빨리 끝날까 봐 그런 것뿐이야.”
그녀는 힐끗 이하린을 보며 덧붙였다.
“괜히 분수에 맞지 않는 마음 품지 않는 게 좋아. 다음번엔 뺨 한 대로 끝나지 않을 테니까.”
이하린은 수도꼭지를 잠그고 휴지를 한 장 뽑아 천천히 손을 닦았다.
그녀는 강한별을 보지도 아무 말도 하지도 않았다.
“말문이 막혔어?”
강한별은 그녀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 걸음 다가가며 더 말하려 했다.
그 순간, 화장실 창문이 밖에서 갑자기 산산이 깨지더니 복면을 쓴 건장한 남자 두 명이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재빠르게 움직여 두 사람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약물이 묻은 수건으로 입과 코를 틀어막았다.
코를 찌르는 자극적인 냄새가 퍼지더니 이하린은 눈앞이 순식간에 캄캄해져 의식을 잃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버려진 창고 안에 있었다.
이하린과 강한별은 함께 묶여 있었고 입에는 헝겊이 물려 있었다.
창고 문이 열리며 김재현이 사람들을 이끌고 급히 들어왔다.
다소 다급해 보였지만 표정은 비교적 침착했다.
“돈은 가져왔으니 사람을 풀어.”
그는 창고 한가운데에 서 있는, 가면을 쓴 납치범 우두머리에게 차갑게 말했다.
“김 대표님, 명성은 익히 들었습니다.”
납치범 우두머리는 괴상하게 웃었다.
“사람을 풀어주는 건 가능한데요. 한 명만입니다. 나머지 한 명은 우리 형제들이랑 좀 놀아줘야겠네요.”
그의 음흉한 시선이 이하린과 강한별을 훑었다.
“김 대표님께서 직접 고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