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화
그녀는 디자인부 인턴이었다.
두 팔 가득 서류를 안고 고개를 숙인 채 복도를 급히 지나가다 그와 부딪혀 서류를 바닥에 쏟았다.
그녀는 허둥지둥 사과하며 쪼그려 앉아 줍기 시작했는데 귀 끝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때 그는 그저 힐끗 보고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이후 귀신에 홀린 듯 그녀의 자료를 찾아보며 디자인 도면을 봤고 그렇게 그 뒤의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왜 하필 하린이었을까? 원하기만 하면 달려드는 여자들은 수없이 많았는데 왜 굳이 강제로라도 데려와야 했던 건 하린이었을까?’
아마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녀에게는 다른 감정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꿈속 장면이 빠르게 바뀌었다.
밤새 그림을 그리다 책상에 엎드려 잠든 그녀를 침대로 안아 옮기자 무의식중에 그의 가슴에 얼굴을 비비던 모습...
그가 위장이 아파 힘들어할 때 서툰 솜씨로 죽을 끓이다 손을 데고도 그의 위장부터 걱정하던 얼굴...
첫 디자인 수당으로 산 넥타이를 그의 목에 매주며 환하게 웃고 말하던 모습...
“재현 씨, 이제 내가 먹여 살릴게.”
그가 애써 무시하고, ‘연기’라고 정의해 버렸던 수많은 순간이 지금은 너무도 선명하게 느껴졌다.
얼음 호수의 그 밤, 끌려 나왔을 때의 창백한 얼굴, 완전히 죽어 있던 눈빛...
마지막 통화 속, 절망에 잠긴 ‘살려줘’와 그가 내뱉은 냉정한 한마디...
“스스로 방법을 찾아.”
김재현은 눈을 뜨고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이마에는 식은땀이 가득해 손으로 얼굴을 문지르자 젖은 감촉이 느껴졌다.
그는 손끝에 묻은 물기를 한참 동안 바라봤다.
장례식 날, 비가 내려 묘지가 더 썰렁하게 느껴졌다.
김재현, 강한별, 그리고 검은 옷의 경호원 몇 명뿐만 장례식에 참석했다.
작은 유골함이 땅속에 내려지고 흙이 조금씩 덮였다.
비는 점점 더 거세졌다.
김재현은 경호원에게 강한별을 먼저 데려가라고 했다.
“담배 한 대만 피우고 갈게.”
강한별은 비에 젖은 그의 어깨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 차에 올랐다.
차가 멀어졌지만 김재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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