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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34화

유태진이 다가오는 순간, 박은영은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박은영의 눈빛에는 거부감이 스쳤고 유태진은 그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잠시 발걸음을 멈춘 유태진은 깊고 어두운 눈동자로 박은영의 얼굴을 오래도록 응시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세워진 듯했다. 그러나 유태진은 박은영의 반응을 따지지 않았고 대신 그녀의 손목에 번진 붉은 발진을 보고는 목소리를 낮췄다. “집에 가서 약 발라. 다음에는 조심하고.” 유태진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없이 박은영을 스쳐 지나 안으로 걸어갔다. 박은영은 미간을 매만지며 한숨을 내쉰 뒤 발걸음을 돌렸다. 복도 한쪽에서는 서연주가 유태진을 기다리듯 다가왔다. “태진 씨, 이따 우리 집에 들러서 밥 먹고 갈래요?” 유태진은 서연주가 오는 방향을 흘깃 보고는 담담히 말했다. “아니. 회사에 일이 있어.” 서연주는 잠깐 실망한 기색을 보였지만 금세 웃음을 지었다. “어젯밤에 저를 챙겨줘서 고마워요.” 유태진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고 옆으로 시선을 돌리며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술을 많이 마셨잖아.” “술이 독해서 좀 기억이 끊겼어요. 그래도 옷은 갈아입혀져 있더라고요. 태진 씨는 참 세심해요.” 서연주는 기분이 한결 좋아진 듯 말했다. 전날 가까스로 정신을 부여잡고 유태진 방으로 간 걸 다행이라 여겼다. 유태진은 서연주의 목덜미에 남은 자국을 흘끗 보고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렸다. “고맙다는 말은 필요 없어.” 유태진은 휴대전화를 꺼내 운전기사에게 항구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서연주는 유태진의 말이 이상하게 들렸다. 마음이 순간 철렁 내려앉았지만 애써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두 사람은 친밀한 관계였기에 굳이 따로 감사할 이유가 없을 거라고 생각을 바꿨다. 서연주는 곧장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태진 씨, 방금 박은영 씨를 만났어요.” 서연주가 고개를 들자 목에 남은 흔적이 한층 뚜렷해졌고 그것을 박은영이 보았다는 사실을 굳이 알리려는 듯했다. 이제는 박은영도 알았으니 남은 부부 관계를 끊어내는 게 마땅하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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