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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9화

심태호는 유능한 사업가였다. 그는 오래전 이미 유언장을 작성해, 모든 재산의 상속자를 단 한 사람, 심준영으로 지정해 두었다. 나희수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심지은이 앉게 된다면, 이야기는 전혀 달라질 것이다. ‘결과만 내가 원하는 대로 된다면, 지은이가 준영이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건 상관없어. 심가희 따위가 지은이랑 상대가 되겠어? 머리도, 눈도, 수완도 다 부족하지. 그런 단순한 성격으로 뭘 해낼 수 있겠어.’ .. 심가희는 여전히 단상 위에 서 있었다. 예식장 안에는 아직도 웅성거림이 가득했다. 심해준이 그녀의 손을 꼭 잡있지만, 심가희는 그 손을 빼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들어 쏟아지는 시선들을 담담히 받아냈다. 그녀는 지금 이 순간이, 평생 조롱당할 빌미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상관없었다. 심가희는 마이크를 들었다. “보시다시피, 신랑인 준영 씨는 사정이 있어 오지 못했습니다.” 그 목소리에는 어떤 흔들림도 없었다. 심가희는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문 쪽에서 방금 들어 온 하수혁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멀리 있어서 표정은 읽을 수 없었다. 그녀는 마치 남의 이야기를 하듯 담담히 말을 이었다. “사실, 오늘 이런 자리를 만든 것 자체가 잘못이었습니다. 저는 여러분께 직접 말씀드리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저와 준영 씨는, 이미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습니다.” 순간, 예식장이 술렁였다. 모두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심해준은 고개를 홱 돌렸고 심호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지만 그는 딸의 말을 가로채지 않았다. 심가희는 모든 걸 내려놓은 사람처럼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했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히 해두겠습니다. 체면이고 뭐고, 오늘 약속을 지키지 못한 건 준영 씨입니다. 성인이라면 자신의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조차 하지 못한 사람은 칭찬받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말에, 조금 전까지 그녀를 비웃던 몇몇 하객들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래도 신랑이 싫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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