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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2화

식사를 끝낸 유태진은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았다. 박은영은 몇 분간 주저하다가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연결 복도 아래에서 유태진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박은영은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그에게 다가갔다. “시간 괜찮아요?” 박은영은 어머니의 기일에 관해 그와 상의하고 싶었다. 그녀가 다가가자, 유태진은 손에 든 담배를 멀리 치우더니 바닥에 비벼 끄며 말했다. “얼마나 됐어?” 멈칫하던 박은영은 뒤늦게야 방금 유태진의 통화 상대가 서연주였음을 알아차렸다. “방금 전화를 끊고 나서요.” 그녀는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차갑게 대꾸했다. 유태진은 그제야 박은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담담하게 말했다. “그날 취했어.” 그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 박은영이 멍하니 서 있자, 유태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너라면 그날 밤 일로 소설은 안 쓸 거로 생각해. 맞지?” 그의 말에 박은영은 순간 머리가 뻥 해지는 것 같았다. 유태진이 말하는 그날 밤이 바로 두 사람의 은밀했던 날임을 깨달은 박은영은 순간 등골이 오싹해져 할 말을 잃은 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태진을 바라보았다. 그는 지금 박은영에게 서연주가 불필요한 오해하지 않도록 말을 아끼라는 경고를 하고 있었다. “그날 일은 유 대표님한테는 실수였고 저로서도 난처한 일이었으니 굳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박은영은 고개를 들어 유태진을 바라보며 조금의 여유도 남기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유태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빤히 그녀를 응시할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 그의 얼굴은 더욱 차가워 보였다. 잠시 뒤, 그는 시선을 돌리고 말했다. “좋아.” 말을 마친 유태진이 자리를 떠나려 하자, 박은영이 서둘러 말을 걸었다. “24일 시간 괜찮아요? 그날 잠시만 시간을 내서 엄마 기일에...” “당 날에 조기현한테 연락해서 스케줄을 확인해 봐. 일이 있어서 가봐야 해. 쉬어.” 유태진은 박은영의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은 채 무심하게 자기 할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이런 일을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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