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화
결국 이시우는 임유정이 나를 데리고 가게 두지 않으며 의사를 불러오게 하고 내가 푹 쉬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던 임유정은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처럼 울음을 터뜨리고는 뛰쳐나갔다.
이시우는 잠시 망설이더니 곧바로 몸을 돌려 그녀를 쫓아갔다.
의사가 처방을 마치고 나서 떠나자 방 안에 혼자 남은 나는 침대에 누워 조용히 아랫배를 쓰다듬었다.
이미 푹 꺼져 있었다.
그런데도 그 작은 생명이 그 안에 머물러 있던 감각만은 지워지지 않았다.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어. 이대로 있으면 정말 미쳐버릴 거야.’
아무것도 필요 없었기에 나는 신분증만 챙긴 채 통증을 참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
그때, 계단 쪽에서 두 사람의 언성이 들려왔다.
“형, 이번에는 유정이가 너무 심했어. 내가 나서서 구하지 않았으면 다희는 그 사람들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었다고.”
곧 이시헌의 냉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마음이 쓰였어? 이시우, 설마 같이 잤다고 정까지 생긴 건 아니지?”
이시우는 잠시 말을 멈췄다고 무언가를 감추려는 듯 크게 소리쳤다.
“말도 안 돼! 거짓말만 늘어놓는 사생아 같은 애를 내가 어떻게 사랑해? 설령 내 아이를 가졌다고 해도 낳게 두지 않을 거야! 그럴 자격 없으니까!”
나는 가슴이 미어져 무의식적으로 아랫배를 짚었다. 그의 말대로 아이는 정말로 사라졌다.
몰래 떠나려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고 결국 온몸이 떨리며 발끝에 힘이 풀리더니 계단 하나를 헛디뎠다.
쿵!
큰 소리를 내며 나는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와 동시에 말다툼 소리가 멈추더니 이씨 가문 형제는 동시에 내 쪽으로 달려왔다.
“다희야, 괜찮아?!”
거의 같은 목소리였다.
고개를 들어 똑같이 긴장한 두 얼굴을 바라봤으나 씁쓸한 기분만 들었다.
‘정말 훌륭한 배우들이네. 이런 상황에서도 이렇게까지 걱정하는 연기를 할 수 있다니... 그래서 나를 꼬박 3년 동안이나 속일 수 있었겠지.’
두 사람도 이상함을 느낀 듯했다.
이시헌은 얼굴빛이 변하더니 먼저 허리를 숙여 나를 안아 들었다.
“다희야, 이쪽은 내 동생 이시우라고 해.”
한 박자 늦은 이시우는 허공에 멈췄던 손을 거두고 마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웃으며 인사했다.
“형수님, 안녕하세요. 저... 해외에서 막 돌아왔어요.”
“얘는 내 그림자야.”
이시헌이 나를 안은 채 다정하게 말했다.
“너도 알다시피 이씨 가문은 규모가 크다 보니 어떤 일들은 그림자가 처리하는 게 나을 때가 있어. 괜히 더러운 일에 널 끌어들이고 싶지 않아서 그동안 말 안 한 거야.”
그 말에 이시우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모욕을 당한 것처럼, 그는 고개를 들고 이시헌을 노려봤다.
그 눈빛에는 분노가 또렷했다.
반면 이시헌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나를 조금 더 끌어안았다.
나는 이 형제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고 심지어 이시헌의 품마저 역겹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그와 껴안는 걸 가장 좋아했었다. 그의 체온, 나를 감싸던 숨결이 전부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와 달리 이시헌의 모든 것이 혐오스러웠고 숨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토할 것 같았다.
나는 조심스럽게 이시헌을 밀어내고는 그들을 보지도 않은 채 앞으로 걸어갔다.
오늘 당장, 이 숨 막히고 괴로운 별장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이시헌은 내 허리를 끌어안아 다시 품으로 데려왔다.
“왜 이렇게 쉽게 질투해?”
마치 예전의 나를 가장 아끼던 남편인 것처럼, 이시헌의 얼굴에는 여전히 다정함이 묻어 있었다.
“유정이는 이미 돌려보냈으니까 투정 그만 부려. 내가 안고 들어가 줄게.”
나는 이시헌의 품에 안긴 채 침실로 돌아왔다.
문을 닫기 전, 이시우와 시선이 마주쳤는데 그 눈빛에는 미련과 분노가 뒤엉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돌렸다.
이제 와서 뒤늦게 감정이 생겼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는 이 사기극에 가담했고 우리 아이가 사라지는 걸 똑똑히 지켜본 사람이었다.
이시헌은 웬일로 인내심을 보이며 나를 침대에 내려놓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리고 아까 나를 진찰했던 의사를 다시 불렀다.
“제 와이프 상태는 어떻습니까?”
“전반적으로 괜찮습니다. 생리 기간에 다친 데다 감정이 좀 격해진 것뿐이에요.”
의사의 말에 나는 무의식적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분명 임신한 상태에서 임유정에 의해 아이를 잃었는데 어떻게 ‘괜찮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러나 곧 그 이유를 알게 됐다.
“유정이가 일부러 전문가를 불러서 널 돌보게 했어. 어쨌든 너희는 자매잖아.”
이시헌은 후계자 포기 각서를 다시 내 앞에 놓았다.
“다음 주가 유정이 생일이야. 이렇게 신경 써주는데 너도 큰 선물 해줘야지.”
이번에는 밀어내지 않고 담담하게 서류를 받아 들었다.
“그래. 아주 큰 선물 해 줄게.”
‘당신들이 평생 잊지 못할, 그런 선물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