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화
이대석은 무자비한 인간이었다.
그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나이프를 꺼내며 앞으로 나섰다.
옆에 있던 안유미는 그 광경에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그녀는 이런 섬뜩한 장면을 감히 바라볼 수가 없었다.
다음 순간.
퍽퍽!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대석의 부하 두 명이 멀리 날아갔다.
그들은 진시후에게 따귀를 맞는 순간 머리가 터져버렸다.
쿵, 쿵.
그들은 바닥에 쓰러졌고 그 뒤로 꼼짝하지 못했다.
두 사람 모두 죽었다.
이대석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늘 자신을 모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진시후가 그보다 훨씬 더 모질었다.
진시후는 그의 부하 두 명을 단숨에 죽여 놓고는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었고 눈동자에도 파문 하나 일지 않았다.
마치 벌레 두 마리를 죽인 듯이 말이다.
‘저 자식 대체 정체가 뭐지? 어떻게 사람을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수 있지?’
옆에 있던 안유미는 두려움에 비명을 지르더니 토하기 시작했다.
진시후는 안유미를 힐끗 보더니 짜증을 내며 말했다.
“나가요.”
안유미는 곧바로 몸을 돌렸고 토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진시후는 마치 이미 죽은 자를 바라보는 듯한 차가운 표정으로 이대석을 바라보았다.
이대석은 침을 꿀꺽 삼킨 뒤 이를 악물며 말했다.
“보통 사람이 아니군. 아주 인정사정 봐주지 않네. 감탄이 나올 정도야. 오늘은 내 운이 좋지 않았던 걸로 생각하지. 이 기회에 나랑 친구가 되는 건 어때? 그러면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갈게.”
진시후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아까 날 죽이려고 해놓고 그냥 떠나려고? 나는 언제 어디서든 늘 한 가지 원칙을 고집해. 그건 바로 화근을 철저히 없애 버리는 거지.”
진시후는 그렇게 말하면서 앞으로 한 걸음 나서더니 이대석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쳤다.
이대석의 부하들은 도망치려고 했다.
그런데 진시후가 테이블을 걷어차는 순간 테이블 위 술병과 포크, 나이프들이 그들의 목을 꿰뚫었다.
진시후는 5년간 수진계에서 살면서 마음이 아주 차가워지고 단단해졌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인자함과 연약함은 자기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게 된다.
이때 우태진이 사람들을 데리고 룸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룸 안의 상황을 살핀 우태진이 황급히 말했다.
“진시후 씨, 걱정하지 마세요. 여긴 제가 잘 처리하겠습니다. 이대석 씨는 제 단골인데 변은규 씨 따까리였어요. 아주 극악무도한 놈이었는데 이런 놈을 죽이는 건 공익을 위한 일이죠.”
진시후는 우태진을 힐끗 볼 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그는 양나민을 안아 든 뒤 빠르게 휘그 바를 떠나 그녀의 별장으로 돌아갔다.
“욱!”
양나민이 토를 하자 진시후는 역겹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그는 눈 깜짝할 사이에 양나민의 옷을 벗긴 뒤 그녀를 욕조 안에 넣었다.
“하하, 그냥 못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문란한 데다가 그 민머리 자식 같은 인간 말종이랑 아는 사이였어? 역시 여자는 얼굴이 아무리 예뻐도 마음이 못나면 안 된다니까.”
진시후는 물속의 양나민을 바라보았다.
“술 깰 때까지 계속 물에 몸을 담그고 있어.”
양나민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마치 심장이 타들어 가는 듯한 기분이 느껴져 손으로 가슴께를 계속 쥐어뜯었고 그 탓에 피부에 상처가 남게 되었다.
진시후는 그 광경을 보고 고개를 저었다.
“아주 안달이 났네. 진짜 믿을 수가 없어. 오늘 아침에 첫 경험을 치렀다니.”
진시후는 양나민을 내버려뒀다.
비록 양나민은 얼굴이 예쁘긴 하지만 진시후는 이미 그녀에게 완전히 실망했다.
당분간 머무를 곳이 없었던 진시후는 양나민의 별장 거실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서 수련하기 시작했다.
5년간 수진계에서 생활하며 수백 번 목숨을 걸고 싸웠던지라 진시후는 내면이 아주 강해졌다.
오늘 이대석, 변은규 일당을 죽인 것은 그에게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진시후에게는 오로지 실력과 세력만이 가장 중요했다.
진시후는 눈을 감은 뒤 심호흡을 하면서 수련에 몰두했다.
다음 날, 아침 햇살이 창문을 통해 욕조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양나민은 비몽사몽 눈을 뜨면서 고개를 젓다가 불현듯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는 자신이 옷 하나 걸치지 않은 채 욕조 안에 밤새 몸을 담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왜 여기서 자고 있었지?”
양나민은 비틀대며 일어난 뒤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그녀는 여전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그녀의 가슴 쪽에 손톱에 할퀸 상처가 가득 남아있었다.
“이거 누가 이런 거야?”
양나민은 순간 화가 치밀어올랐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 바에서 정신을 잃기 전 마지막으로 진시후를 봤음을 떠올렸다.
틀림없이 진시후가 양나민을 집으로 데려온 뒤 옷을 전부 벗겨서 욕조 안에 담가뒀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가 정신을 잃은 사이 몸에 손을 댔을 것이다.
‘이렇게 심하게 괴롭힌 거야? 이 빌어먹을 자식!’
양나민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올랐다. 그녀는 진시후가 이렇게 파렴치할 줄은 몰랐다.
“이 망할 놈!”
양나민은 욕실 문을 열고 침실로 돌아가 옷을 찾아 입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진시후가 거실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진시후! 너 이 자식. 네가 그러고도 남자야?”
양나민은 진시후를 보더니 더는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러대며 진시후를 욕했다.
눈을 뜬 진시후는 처음에는 놀랐다.
밤새 욕조에 있은 양나민은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있었는데 아침 햇살 아래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내 진시후는 화가 났다.
‘고마운 줄도 모르고 다짜고짜 화부터 낸다고?’
그는 어제 양나민을 구해줬는데 양나민은 그에게 고마워하기는커녕 아침부터 욕을 했다.
“넌 진짜 인간이 덜됐구나. 예의 갖춰.”
진시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양나민은 화가 나서 이성을 잃은 상태라 진시후에게 달려들어 그의 머리채를 잡았다.
“이 교활하고 비열한 쓰레기 같은 변태 새끼야. 네가 이런 빌어먹을 놈이니까 유채윤이 너를 개처럼 굴렸지. 넌 확실히 남자가 아니야. 넌 짐승이야!”
양나민은 진시후가 자신의 가슴에 상처를 남긴 줄 알았다.
그 상처들은 보기 섬뜩할 정도로 흉측했다.
양나민은 자신이 약을 탄 술을 마시고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자제력을 잃고 가슴을 마구 할퀴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했다.
진시후는 양나민에게서 욕을 듣고 분노했다.
“그래. 난 남자가 아니야. 내가 쓸데없이 남 일에 끼어들었네. 문란하고 못돼 먹은 양나민, 어디 네가 직접 확인해 봐봐. 내가 남자인지 아닌지!”
진시후는 양나민을 힘껏 잡아당겼고 두 사람은 소파 위로 쓰러지게 되었다.
양나민은 진시후의 머리채를 잡았다가 이내 또 한 번 진시후에게 당하게 되었다.
처음에 양나민은 욕설을 마구 퍼부었지만 시간이 조금 흐른 뒤에는 욕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양나민은 간신히 정신을 다잡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그리고 휴대전화 화면을 확인한 순간 화들짝 놀랐다.
유채윤에게서 걸려 온 영상통화였다.
양나민은 차마 받을 수 없었다.
만약 유채윤이 이런 광경을 보게 된다면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숨을 것이다.
양나민은 황급히 휴대전화를 옆으로 치웠다.
진시후는 그 모습을 보더니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하, 왜 안 받는 건데? 네 친구한테 우리가 지금 뭘 하는지 보여줘 봐. 네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줘 보라고!”
“나쁜 놈!”
양나민은 감히 진시후와 더 다투지 못했다.
다른 한편, 유채윤은 답답한 심정으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양나민에게 진시후는 어떻게 됐는지 묻고 싶었는데 유채윤이 그녀의 영상통화를 그냥 끊어버렸다.
“양나민 대체 뭐 하는 거지? 내 개를 좀 빌려줬더니 이젠 전화도 안 받네? 설마... 진시후를 심하게 괴롭혀서 죽여버린 건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유채윤은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 안을 둘러보았고 왠지 모르게 쓸쓸함을 느꼈다.
그녀는 진시후의 아내라는 신분 덕분에 이토록 화려하고 큰 집에서 살 수 있었다.
“내가 진시후의 아내가 아니라면 우리 유씨 가문은 이렇게 많은 재산을 빼앗을 수가 없었을 것이고 나도 이렇게 여유롭게 큰 집에서 지낼 수 없었을 거야. 지난 3년 동안 멍청한 진시후는 줄곧 내 옆에 있으면서 날 위해 등을 밀어주고, 마사지를 해주고, 집안일도 해주고 날 웃겨주기도, 내 화풀이를 받아주기도 했어. 사실... 사실 난 진시후가 꽤 마음에 들어. 그냥 강아지보다는 훨씬 나아. 세상에. 설마 양나민 진짜 진시후를 괴롭혀서 죽인 건가? 아무리 그래도 진시후는 내 남편인데 설마 진짜 죽이기야 했겠어? 안 되겠다. 직접 확인해 봐야겠어!”
유채윤은 문득 자신이 진시후의 생사를 꽤 신경 쓴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녀는 옷을 갈아입은 뒤 곧장 차를 타고 스타돔에 있는 양나민의 별장에 도착했다.
유채윤은 끊임없이 초인종을 누르면서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민아 나민아. 문 좀 열어봐! 얼른!”
방 안에서 양나민은 정신이 몽롱한 상태였는데 갑자기 유채윤이 문밖에서 자신을 부르고 있는 게 들려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양나민은 황급히 진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채윤이가 왔어!”
진시후는 입꼬리를 올리며 차갑게 웃어 보였다.
“잘됐네. 그냥 들어오라고 해. 네 그 악랄하고 지독한 친구에게 이 모습을 보여주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