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2화

서고은은 계모가 해외에서 요양 중이라던 그 딸이 바로 이시현의 첫사랑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하늘은 정말 잔인한 장난을 쳤다. 다음 순간, 임단비가 서고은 쪽으로 걸어와 달콤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언니, 미안해요. 시끄러웠죠...” 말끝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서고은은 “쾅” 하고 문을 닫아버렸다. “서고은! 너는 예의라는 게 있긴 한 거냐!” 서동수가 밖에서 고함쳤다. “네 방 비워. 단비가 마음에 들어 하더라. 이제 거기가 그 애 방이다!” 서고은은 비웃음을 흘리고 옷장을 열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문밖에서는 희미하게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삼촌, 언니 화난 거예요?” 임단비의 목소리는 너무도 여리고 부드러웠다. “신경 쓰지 마라. 어릴 때부터 너무 예쁨만 받고 자라서 버릇이 없어.” “하지만...” “괜찮아. 곧 제주도로 시집갈 거야. 앞으로 이 집은 너랑 너희 엄마 거다.” 서고은의 손이 잠시 멈추더니 이내 더 깊은 냉소가 입가에 떠올랐다. 그녀는 바로 이달 말 제주도행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다시 묵묵히 짐을 쌌다. 반 시간 후, 서고은은 캐리어를 끌고 방에서 나왔다. 거실에서는 서동수, 임수연, 임단비가 나란히 앉아 과일을 먹으며 한가롭게 TV를 보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행복한 가족 같았다. 그녀는 그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걸음을 옮겼다. “거기 서!” 서동수가 날카롭게 외쳤다. “또 무슨 짓을 하려고? 네가 한 약속 잊지 마!” “걱정하지 마세요.” 뒤돌아보지도 않고 서고은이 대답했다. “내가 하겠다고 한 건 반드시 해요. 다만 시집가기 전까지 이 집구석에서는 속이 울렁거려서 더는 못 버티겠네요.” 그녀는 곧장 가장 비싼 호텔로 가 스위트를 잡았다. 그다음 며칠 동안, 서고은은 광적으로 쇼핑을 했다. 가장 비싼 웨딩드레스를 사고 경매장에서 고가의 앤티크 보석들을 통 크게 사들여 모두 예단이라는 명목으로 챙겼다. 비록 액운을 막아주는 신부로 시집간다고 해도 그녀는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갈 생각이었다. 휴대폰은 계속 진동했지만 그녀는 마지막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고르고 나서야 휴대폰을 꺼냈다. [부재중 전화 38통.] 전부 서동수였다. 전화받자마자 서동수의 분노가 폭발했다. “미쳤어? 하루 만에 6,000억 원을 써? 너 때문에 내가 곧 파산하게 생겼어!” “뭘 놀라요?” 서고은이 비웃었다. “내가 시집만 가면 바로 10조 들어오잖아요.” “그 돈은 아직 안 들어왔다! 계속 이렇게 써대면 회사는 내일 당장 망할 거야!” 서고은은 입꼬리를 더 세게 올렸다. 그게 바로 그녀 의도였다. 그 10조 원은, 제주도에 가는 순간 심씨 가문에서 그녀의 개인 계좌로 입금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때가 되면 임단비와 그 불륜녀 임수연이 과연 한 푼 없는 늙은 남자를 계속 붙들고 있을지 두고 볼 참이었다. ‘세상 모두가 우리 엄마처럼 순진할 거라 생각하는 건가? 남편과 함께 맨손으로 사업을 일구고, 과로로 병원에 실려 가고, 끝내 불륜녀에게 자리를 내주기 위해 죽음으로 몰려 그 바보 같은 선택을...’ 그런 가여운 기억이 떠오르자 서고은은 심장이 찢어질 듯 아파졌다. 그때 휴대폰이 다시 울렸고 이시현의 문자였다. [또 무슨 일이야? 오늘 왜 회사에 안 왔어?] 서고은은 그 문자를 오래도록 바라봤다. 지난 1년간, 이시현이 ‘교육한다’라는 이유로 그녀는 거의 매일 회사에 나가야 했다. 하지만 이제 그녀는 곧 결혼한다. 그렇다면 그가 그녀를 더는 간섭을 할 자격이 없었다. 쇼핑백 수십 개를 들고 호텔로 돌아왔을 때 대기실에 그녀의 짐이 몽땅 쌓여 있는 것이 보였다. “이게 뭐죠?” 그녀가 차갑게 묻자 프런트 직원이 난처하게 설명했다. “서고은 님, 고객님의 카드가 더 이상 승인되지 않습니다. 호텔 규정상...” 그때 휴대폰이 울렸고 서동수의 메시지였다. [관계 끊는다며? 그럼 내 카드도 쓰지 마. 네 모든 계좌는 내가 동결했다.] 서고은은 화면을 오랫동안 바라봤다. 너무 오래 바라본 탓에 눈이 시큰거릴 정도였다. 그리고 짧게 답장을 보냈다. [네.] 그녀는 캐리어를 끌고 거리로 나왔다. ‘떠나기 그전까지 어디에서 자야 하나? 뭘 먹고 어떻게 살아야지?’ 캐리어 안에는 전부 웨딩드레스와 예단뿐이었고 하나도 팔 수 없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남의 우스운 꼴을 보기 좋아하는 인간들 앞에서 굴복하느니 차라리 길바닥에서 자는 게 나았다. 근처 공원의 벤치에 누울 수나 있을까 싶어 짐을 내려놓자 술 냄새가 진동하는 남자가 다가왔다. “아가씨 혼자야?” “꺼져!” “왜 그래? 오빠랑 좀 놀자고...” 남자가 그녀 어깨에 손을 올리려는 순간, 서고은은 그대로 그의 뺨을 후려칠 준비를 했다. “악!” 남자의 비명이 터졌다. 이시현이 언제 나타났는지도 모르게 그 남자의 손목을 한 손으로 꺾어버린 것이었다. 서고은이 놀라기도 전에 그녀는 이시현에게 팔목을 붙잡힌 채 사람이며 짐이며 그대로 차 안으로 끌려갔다. “놔!” 이시현은 그녀의 발버둥 치는 손목을 단단히 잡으며 낮게 말했다. “또 왜 이래?”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더 낮게 깔렸다. “집에서도 나오고 갈 데도 없으면서 왜 나한테 연락 안 했어?”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