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3화

새벽 2시, 신지은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본능적으로 몸을 일으켜 문을 열려는 순간, 거실 쪽에서 안이서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가. 소파가 딱딱해서 아프단 말이야.” 곧, 강재민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도 같이 들렸다. “조용히 해.” “왜 그렇게 겁에 질려있어? 어차피 지은 씨는 아무것도 못 듣잖아. 지금 우리가 침실로 들어가 당당하게 사랑을 나눠도 모를걸? 너도 참 답답했지? 매일 청각장애인하고만 붙어 있으니...” 강재민은 쉰 목소리로 그녀의 말을 뚝 끊어버렸다. “그만해.” 하지만 안이서는 멈추지 않았다. “내 말이 틀렸어? 너 지은 씨랑 할 때마다 속으로는 내 생각을 한 거 아니야?” 그 뒤로 들려온 건 천이 스치는 소리, 입술이 맞닿을 때의 축축한 소리, 몸이 부딪히는 둔탁한 소음이었다. 거리낌 없는 안이서의 신음, 억눌리다 터져 나오는 강재민의 거친 숨소리. 그건 신지은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고삐가 완전히 풀려 버린 소리였다. 신지은은 문 뒤에 서서 온몸이 얼어붙은 듯 움직일 수 없었다. 이내 그녀는 강재민과의 모든 잠자리를 떠올렸다. 그는 늘 조심스러웠고 부드러웠으며 마치 해야 할 일을 수행하듯 움직였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나면 꼼꼼히 정리해 주고 이불을 덮어 준 뒤, 뒤에서 신지은을 끌어안은 채 잠이 들었다. 지금껏 그녀는 자신의 몸이 약해서 강재민이 자기를 배려해 주는 거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야 알았다. 그는 단지 욕망이 없었던 것뿐이라는 걸. 강재민이 진짜 원했던 건 지금 거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무모하고 통제 불가능한 순간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소파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점점 더 견디기 힘들어졌다. 신지은은 문고리를 놓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서 떨리는 몸을 억지로 억누르며 깊은숨을 들이마셨다. ‘나는 떠날 거야. 두 사람이 무슨 짓을 하든 이제 나와는 상관없어.’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내일 있을 오디션이니 오늘 밤만큼은 제대로 쉬어야 했고 상황을 일단락시킬 뭔가가 필요했다. 그래서 신지은은 일부러 소리를 내며 문을 확 열었고 거실의 소리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녀는 더듬거리며 밖으로 나와 공중에서 손을 허우적거리며 마치 불을 켜려는 것처럼 행동했다. 그러자 어둠 속에서 뭔가가 바스락거리더니 곧 다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이내 강재민은 땀에 젖은 손으로 신지은의 손을 붙잡았다. 그는 그녀를 침실 쪽으로 이끌며 테이블을 지나칠 때 컵을 집어 신지은의 손에 쥐여 주었다. 강재민은 그녀를 침실로 밀어 넣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혔지만 신지은은 계속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후, 그는 마치 놀란 짐승을 달래듯 아주 조심스럽게 신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신지은은 휴대전화를 꺼내 아무것도 모르는 척 글자를 입력했다. [무슨 일이야?] 강재민은 휴대전화를 건네받고는 이런 답을 남겼다. [물 마시고 싶으면 내가 가져다줄게. 너무 늦었어. 불 켜지 말고 그냥 자.] 신지은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에게 등을 돌린 채 다시 누웠다. 그러자 강재민은 침대 옆에 서 있다가 조용히 문을 닫고 방을 나가버렸다. 너무도 익숙한 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지고 거실은 다시 완전한 정적에 잠겼다. 다음 날 아침, 신지은이 일어났을 때 강재민은 이미 아침을 차려 놓고 있었다. 그는 늘 하던 대로 그녀에게 수어로 물었다. [오늘 재활 치료 가?] 신지은은 하모니아에 갈 거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솔직히 강재민에게 알려 주고 싶지도 않았다. 강재민은 뒤에서 그녀를 아주 가볍게 끌어안았다. 그 순간, 신지은의 시선이 그의 옷깃 아래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립스틱 자국에 멈췄다. 그녀는 가만히 서서 강재민이 자기 몸에서 손을 뗄 때까지 기다렸다. 아침을 먹고 난 뒤, 신지은은 서랍을 열어 제일 안쪽에 넣어 두었던 벨벳 상자를 꺼냈다. 그건 그녀가 처음 대회에서 상을 받았을 때 받은 아주 귀한 재질로 만든 비싼 피크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쓰지 못한 채 색이 바랬지만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해 온 물건. 오늘은 신지은이 다시 일터로 돌아가는 날이었으니 그녀는 이 피크를 끼고 새출발을 함께하고 싶었다. 적어도 앞으로의 삶은 자기 자신을 위해 살겠다는 의미로. 하지만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신지은은 서랍을 몇 번이나 뒤졌지만 끝내 찾지 못해 전체를 통째로 끌어냈다. 악보, 낡은 사진, 빛이 바랜 공연 프로그램, 물건들이 와르르 바닥에 쏟아졌다. 그녀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잡동사니 속을 미친 듯이 뒤졌다. 어느덧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이마에 달라붙고 숨은 가빠졌지만 8개의 피크는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던 강재민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이내 그의 시선이 빈 벨벳 상자로 향했고 지금 신지은이 무엇을 찾는지 바로 알아챘다. 강재민은 다가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수어로 말했다. [찾지 마. 이서가 마음에 든다고 해서 내가 줬어.]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