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82장

“연화야, 받아 들이지 못 한다는 건 네가 그만큼 마음에 두고 있다는 반증이란다.” 늘상 잔잔하던 스님의 눈동자에 물결이 이는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들 앞에서 줄곧 공격적으로만 보이려 하던 고연화는 스님 앞에선 뾰족함을 거두고 온순한 양이 되어 있었다. “스님, 그럼 스님은 이젠 상처를 줬던 사람들을 용서하셨어요?” 스님의 눈가에 어둠이 짙게 깔렸다. “아니, 절대 용서 못 하지.” 모자 사이로 삐죽 삐죽 나온 잔머리들이 스님의 마음 속 미련들 마냥 살랑 살랑 흔들렸다. “사실 아들이 있어, 늘 그 애를 가슴에 품고 살지.” 조금은 놀라웠다, 스님에게 아들이 있다는 소리는 처음이니까. “그럼 아들 분은 올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스님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마 곧 서른일걸. 결혼은 했는지, 잘 지내고는 있는지 모르겠구나.” 그러자 고연화가 약간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스님, 그럼 돌아 가서 얼굴이라도 보시지 그러셨어요?” 스님이 눈꺼풀을 축 늘어 뜨렸다. “아니, 난 그 애 아버지는 죽어도 보기 싫거든!” “전남편 분이요? 왜요? 혹시 스님 다치게 하셨어요? 가정 폭력이라든가......” “때린 적은 단 한번도 없어. 배신은 손에 꼽지도 못할 정도로 많이 했지만.” 이내 스님이 의미심장하게 고연화의 어깨를 두드렸다. “연화야, 절대 남자들이 하는 입 바른 소리에 넘어가면 안 돼......” “스님, 그건 너무 절대적인 말씀이네요. 좋은 남자들도 있습니다, 저처럼.” 탁지훈이 걸어 들어오며 스님의 말을 끊어냈다. “이 분은?” “아, 그냥 아는 사람이에요.” 고연화가 딱히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대충 대답했다. 그냥 아는 사람? 알고 지낸 지가 언젠데 아직도 겨우 이 정도 수식어 밖에는 못 차지한다고? 탁지훈이 얼굴을 삽시간에 일그러 뜨리며 씁쓸하게 웃어보였다. “스님 안녕하세요, 연화 씨 친굽니다. 같이 스님 뵈러 온 거고요. 성이 탁씨이니 탁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탁지훈을 바라보던 스님이 다시 걱정스러운 눈빛을 하고 고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