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양혜린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강가영이 이렇게까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 말이다.
그녀는 무릎의 통증도 잊은 채 비틀거리며 병실을 뛰쳐나와 계단을 내려갔다.
병원 아래 작은 정원에 도착했을 때 주태준은 이미 와 있었다. 그는 속옷 차림의 강가영을 조심스럽게 안고 있었고 얼굴은 무서울 만큼 굳어져 있었다.
강가영은 주태준의 품에 파고들어 통곡했다.
“태준 씨, 흑흑... 전부 사모님 때문이에요! 어제 태준 씨가 전화를 안 받아서 시어머니에게 벌을 받은 걸 전부 저한테 화풀이했어요! 저를 때리기까지 하고 옷을 다 벗겨서 병실에서 쫓아낸 거예요... 저, 이런 모욕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순간적으로 뛰어내린 거예요...”
주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늘 가볍게 웃음을 머금던 그 두 눈은 지금 얼음처럼 차가웠고 뾰족한 화살처럼 양혜린만 날카롭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는 예전에 봤던 관용도 온기도 없었다. 오직 철저한 실망과 섬뜩한 살기만이 담겨 있었다.
양혜린은 온몸이 굳어버린 듯했다. 차가운 기운이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결혼 5년 만에 그녀는 처음으로 주태준의 얼굴에서 이런 차가운 눈빛을 보았다.
예전에는 아무리 그녀가 소란을 피워도 그는 기껏해야 난감하게 웃거나 무시했을 뿐, 원수를 보듯 그녀를 본 적은 없었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주태준은 양혜린의 병실로 찾아왔다.
그는 침대 옆에 우뚝 서 있었다. 빛을 등진 그의 모습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크게 느껴졌고 말 없는 압박감이 흘렀다.
“양혜린.”
그는 그녀의 이름을 또렷하게 불렀다.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의 기복조차 없었다.
“이번 일은 네가 너무 했어.”
양혜린은 그저 그를 조용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때 네가 어머니한테 벌을 받고 있는 줄은 몰랐어. 그리고 가족 모임도 네가 먼저 안 간다고 했잖아. 그래서 가영이를 데리고 간 거고.”
“그런데 네가 억울하다고 해서 아무 죄도 없는 사람에게 분풀이를 해? 가영이가 3층에서 뛰어내려서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는 거 알고 있어? 정말 무슨 일이라도 생겼다면 네가 감당할 수 있겠냐고!”
다른 여자를 위해 자신을 몰아세우는 그의 모습을 보며 양혜린은 심장이 수십 개의 바늘에 동시에 찔리는 듯해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쉰 듯하지만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태준은 전혀 반성하지 않는 그녀의 모습을 보고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
“그동안 내가 널 너무 감싸준 모양이네. 그래서 이렇게 제멋대로 굴고, 사람 목숨도 가볍게 여기게 된 거야.”
그는 잠시 멈췄다가 심판을 내리듯 또박또박 말했다.
“이번에는 반드시 교훈을 줘야겠어. 확실하게.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내 모든 애인들이 네 손에 죽어 나가지 않겠어?”
그는 문 쪽을 향해 손뼉을 쳤고 곧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 두 명이 들어왔다.
“거제도 인근 개인 섬으로 데려가요.”
주태준의 목소리는 아주 차가웠다.
“그리고 바다에 던져요. 그 바다에 있는 상어가 세 번쯤 물게 한 다음 다시 건져 올려요.”
그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양혜린을 바라보았다. 동요는 없었고 잔인할 만큼 냉정한 훈계만 있을 뿐이다.
“상어에게 물려 찢기는 고통을 기억해. 그래야 앞으로 얌전히 주씨 가문 안주인 노릇 할 수 있을 테니까. 앞으로 내 애인들한테... 질투 같은 건 하지 말고.”
“질투?”
양혜린은 터무니없는 말을 들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고는 분노와 절망으로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노려보며 말했다.
“주태준! 그때 당신이 내 뒤만 졸졸 쫓아다닐 때 뭐라고 했는지 잊었어?!”
자리를 뜨려던 주태준의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그 역시 마음속 깊은 곳에 봉인된 기억을 떠올린 듯했다. 한강 근처에서 찬란하게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며 영원히 그녀를 사랑하고 지켜주겠다고 맹세하던 자신을 말이다.
병실은 잠시 완전한 침묵에 잠겼다.
몇 초 뒤 그는 등을 돌린 채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양혜린, 사람은 언젠가 변하게 되어 있어.”
그 한마디는 최종 판결처럼 그를 향한 그녀의 모든 기대와 사랑을 산산이 부숴버렸다.
사람은 변한다. 그래서 그의 사랑은 사라지고 약속은 무효가 되며 그녀만 지켜주겠다는 약속은 상처로 변했다.
“하... 하하...”
양혜린은 나직하게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은 처절하고도 절망적이었다.
경호원들이 다가와 거칠게 그녀를 침대에서 끌어 내렸다.
그녀는 강제로 병원을 떠나 차에 실렸고 차는 끝없이 질주해 거제도 인근의 외딴 개인 섬에 도착했다.
밤은 깊었고 바닷바람에는 비릿한 냄새가 섞여 있었다. 파도가 암초를 때리며 섬뜩한 소리를 냈다.
경호원은 주저 없이 그녀의 손목을 깊게 그어 상처를 냈다. 그러자 피가 순식간에 솟구쳤고 곧바로 그녀를 얼음처럼 차가운 바다로 밀어 넣었다.
짙은 피 냄새가 바닷물 속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양혜린은 차가운 바다에서 몸부림을 쳤다. 상처가 소금물에 닿자 타들어 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멀지 않은 수면 위로 소름 끼치는 등지느러미 몇 개가 스쳐 지나갔다. 그것은 상어였다. 그녀의 피 냄새에 이끌려 온 것이었다.
첫 번째 상어가 돌진해 이빨이 가득한 입을 벌리고 그녀의 종아리를 세차게 물어뜯었다.
“아악!!!”
온몸을 찢는 듯한 통증이 순식간에 덮쳤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까지 귓가에 또렷하게 들려왔다.
이어서 두 번째 상어가 그녀의 팔을 꽉 물어버렸다. 세 번째 상어는 허리 옆의 연한 살점을 뜯어내기도 했다...
엄청난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와 그녀를 집어삼켰고 의식은 극한의 통증 속에서 빠르게 사라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