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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양혜린이 다시 의식을 되찾았을 때 코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로 가득 찬 병실에 누워있었다. 온몸은 두꺼운 붕대로 감겨 있었고 상어에게 물렸던 상처에서 둔한 통증이 반복적으로 올라오며 얼마 전 겪었던 비인간적인 고통을 상기시켰다. 병실은 섬뜩할 만큼 조용했다. 간호사가 정해진 시간에 들어와 드레싱을 갈아주는 것 외에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주태준이 한 번도 오지 않았다는 걸 양혜린은 알고 있었다. 지금쯤 그는 강가영의 곁에서 부드러운 말로 위로하며 정성껏 보살피고 있을 터였다. 마음은 이미 아픔을 넘어서 무감각해졌고 죽은 듯한 황량함만 남아 있었다. 퇴원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양혜린의 생일이었다. 예전에는 주태준이 아무리 바빠도 그녀를 위해 극도로 호화로운 생일 파티를 열어 서울의 내로라하는 인물들을 모두 초대했다. 올해도 겉으로는 다르지 않았다. 해 질 무렵이 되자 주씨 가문 별장은 불빛으로 환했고 손님들로 가득 찼다. 화려한 옷과 향수 냄새 속에서 마치 이전의 모든 참담한 일들이 없었던 것처럼 보였다. 다만 파티의 주인공인 남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양혜린은 우아한 검은 롱드레스를 입고 술잔이 오가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었다. 혼자 피어난 검은 장미처럼 차갑고 고독했다. 이때 핸드폰이 울렸다. 주태준이었다. 전화기 너머로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수선한 소음과 함께 무심한 기색이 묻어 있었다. “혜린, 생일 파티 시작했어? 그럼 즐겁게 놀아.” 그는 잠시 멈췄다가 가볍게 덧붙였다. “전에 있었던 일은 다 없던 거로 하자. 오늘은 네 생일이니까 잘 보내. 난 회의 때문에 도저히 자리를 못 비우겠고, 대신 가영이를 보내서 선물 전하게 했어. 곧 도착할 거야.” ‘없던 일로 한다고?’ 양혜린은 핸드폰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손마디가 하얗게 질렸다. ‘사람을 시켜 그녀를 바다에 던져 상어 밥으로 만들 뻔한 일이, 주태준의 입에서는 이렇게 쉽게 지워질 수 있는 일이었던가?’ 그녀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전화기 너머에서 누군가 재촉하는 소리가 났고 주태준은 이만 끊겠다며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연회장 입구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강가영은 유난히 눈에 띄는 붉은색 미니드레스를 입고 요염하게 걸어 들어왔다. 승자의 미소를 띤 채 손에는 두 개의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 그녀는 곧장 양혜린 앞에 서서 더 큰 상자를 내밀었다. 목소리는 한껏 애교를 담고 있었다. “사모님, 생일 축하해요. 이건 태준 씨가 보내준 선물이에요. 신상 악어가죽 가방인데 파리에서 특별히 빠른 항공편으로 들여온 거라네요.” 주변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호기심, 동정, 그리고 숨기지 않는 고소함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양혜린은 받지 않았다. 강가영은 개의치 않고 다른 하나, 알록달록하게 포장된 작은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하얀 국화로 만든 눈을 찌를 듯한 화환 몇 개가 들어 있었다. 그녀는 화환을 꺼내 들고 사람들의 숨죽인 탄식 속에서 웃으며 양혜린 앞으로 내밀었다. 목소리에는 독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그리고 이건 제가 주는 생일 선물이에요. 사모님... 빨리 죽으라고 준비한 거예요. 그래야 내가 하루빨리 당당하게 주씨 가문 안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주변은 순식간에 정적에 휩싸였다. 모두가 강가영의 노골적인 도발에 얼어붙었다가 곧 억누르지 못한 수군거림이 퍼졌다. “세상에... 주태준이 강가영을 이렇게까지 감싼다고요?” “이런 자리에서 애인을 보내 본처의 자존심을 짓밟게 하다니...” “사모님 체면은 도대체 어디에다 두라는 거죠...” 양혜린은 죽음과 저주를 상징하는 화환과 우쭐대는 강가영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며칠간 쌓여 있던 분노와 치욕, 절망이 한순간에 폭발했다. 그녀는 손을 번쩍 들어 강가영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강가영은 고개가 돌아갈 만큼 맞았고 얼굴에는 선명한 손자국이 떠올랐다. 그녀는 뺨을 감싸 쥔 채 믿을 수 없다는 듯 양혜린을 노려봤다. “네가 뭔데?” 양혜린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고 사람을 압도하는 기세가 실려 있었다. “몸으로 기어오른 장난감 주제에, 내 앞에서 잘난 척해? 화환을 보내? 강가영, 설령 내가 죽는다고 해도 주씨 가문 안주인 자리에 네가 앉을 수 있을 것 같아? 넌 내 발끝에도 못 미쳐!” 그녀는 강가영이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곁의 경호원에게 명령했다. “저 여자, 잡아요! 차 뒤에 묶어요!” 경호원은 잠시 멈칫하며 망설이는 눈빛으로 양혜린을 봤다. “말귀를 못 알아들어요?!” 양혜린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녀의 눈빛은 칼처럼 날이 서 있었다. 경호원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달려들어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치는 강가영을 제압했다. 거친 밧줄로 두 손을 묶고, 다른 한쪽 끝을 양혜린의 붉은 스포츠카 트렁크 고리에 연결했다. “양혜린! 미쳤어?! 나한테 손대면 태준 씨가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몸을 제압당한 강가영은 당황해하며 날카롭게 외쳤다. 양혜린은 차 문을 열고 운전석에 앉아 엔진을 켰다. 창문을 내린 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강가영을 향해 차갑게 웃었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럼 직접 와서 해보라고 해.”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는 액셀을 세게 밟았고 스포츠카는 화살처럼 빠르게 튀어 나갔다. “아악!!!” 강가영은 엄청난 관성에 끌려가며 처절한 비명을 연달아 질렀다. 몸은 거친 아스팔트 위에서 미친 듯이 쓸리고 구르기 시작했다. 붉은 스포츠카는 한 사람을 끌고 서울의 번화한 밤거리 위를 질주했다. 그 광경은 세상을 뒤흔들 만한 행진처럼 보였다. 지나던 차량들은 황급히 길을 비켰고 행인들은 걸음을 멈추고 놀라 외쳤다. 어떤 이들은 핸드폰을 꺼내 이 끔찍한 장면을 촬영하기까지 했다. 양혜린은 백미러를 통해 차 뒤에서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다 이내 피투성이가 되어가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파괴에 가까운 쾌감을 느꼈다. 달리던 중 익숙한 검은색 벤틀리 한 대가 빠른 속도로 따라붙어 그녀와 나란히 달렸다. 주태준이 창문을 내렸다. 잘생긴 얼굴에는 이전에 없던 음울함과 초조함이 가득했다. 그는 그녀를 향해 고함쳤다. “양혜린! 미쳤어?! 당장 멈춰! 정말로 사람 죽일 셈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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