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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할 수 있어

“제가요?” 심가희는 비틀거리더니 트림을 했다.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남자는 손을 끌어당겨 클럽을 나섰다. 술에 취한 탓에 어떻게 차에 타서 호텔 방까지 들어왔는지 기억조차 없었다. 등 뒤로 차가운 벽이 느껴질 때야 희미한 불빛이 눈에 들어왔다. “불 좀 꺼줘요.” 그녀가 말했다. 남자는 칠흑 같은 눈동자로 빤히 응시하며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이내 허스키한 목소리가 나지막이 울려 퍼졌다. “지금이라도 후회하면 얘기해.” 심가희는 왠지 무시당한 기분이 들었다. 고작 원나잇 따위 뭐가 대수라고. “곽도현만 된다는 법은 없잖아요. 나도 할 수 있어요.” 그러고 나서 두 손으로 남자의 목을 끌어안고 까치발을 들더니 탐스러운 입술에 키스했다. 빈틈없이 꼭 닿은 채 말캉한 입술로 지분거렸다. 남자는 어리둥절했다. 서툰 키스가 끝나갈 무렵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뒤통수를 감싸 쥐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리드하며 색다른 경험을 체험하도록 했다. 심가희는 남자의 배려에 심장 박동이 점점 빨라졌고, 잠시 후 긴장이 서서히 풀렸다.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순간 나지막이 달래주는 담담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가희는 미간을 찌푸렸다. 남자의 짙고 긴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렸고, 욕망을 억누르는 듯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져 있었다. 낯선 설렘에 어쩔 줄 몰라 어느새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남자는 그녀를 꽉 껴안았다. 곧이어 심가희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본능이었다. 그녀의 얼굴을 내려다보던 남자는 피식 웃더니 점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날은 이미 훤히 밝았다. 심가희는 멍한 얼굴로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 채 비몽사몽 몸을 일으켰다. 곧이어 지난밤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나, 가질래요?’ ‘밑지는 장사는 아닐 텐데.’ 세상에! 대체 무슨 망언을 한 거지? 눈을 내리깔자 엉망이 된 침대가 시야에 들어왔고 식겁한 나머지 까무러칠 뻔했다. 이내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침대가 텅 비어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하려는 찰나 욕실에서 물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반투명 유리 너머로 남자의 실루엣이 비쳤다. 온몸이 욱신거리는 통증도 잊고 서둘러 옷을 챙겨 입은 그녀는 가방을 챙긴 다음 신발을 신을 틈도 없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갔다. 호텔 밖으로 나오자 마침 서 있는 택시에 허둥지둥 올라탔다. 조금 진정되고 나서 어젯밤의 기억이 자꾸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심가희는 스스로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처음 보는 남자랑 원나잇을 할 수 있지? 첫 키스에 무려 3번의 관계까지! 회사에 도착했을 땐 이미 출근 시간이 지났다. 비서실에 들어서자 한 동료가 다가왔다. “왜 이제 와요? 대표님께서 찾으셔요.” 곽성 그룹에서 곽도현의 비서 외에는 아무도 그녀의 정체를 모른다. “길이 막혔어요. 지금 가볼게요.” 심가희는 가방을 내려놓고 어제 미처 사인하지 못한 서류를 챙겨서 대표실로 향했다. 똑똑 노크한 다음 안에서 들어오라는 말이 들리자 문을 열었다. 사무용 책상 앞에 앉은 곽도현은 서류를 보고 있었다. 잠시 후 고개를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를 향해 걸어왔다. “어젯밤 왜 내 전화 안 받았어?” 부드러운 어조, 잘생긴 얼굴에는 걱정과 질책이 뒤섞였다.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속이 바질바질 타들어 갔잖아.” 출근하는 길에 곽도현의 부재중 전화 세 통을 봤다. 심가희는 눈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보았다. 진지한 표정은 마치 정말로 그녀를 걱정하는 듯했다. “어제 퇴근할 때 웨딩숍에서 전화가 왔어요. 드레스 수선이 끝났다고 해서 도현 씨랑 같이 가려고 했는데 자리에 없더라고요. 그래서 혼자 입어보고 엄마 병문안 갔죠.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놔서 전화를 못 받았어요.” 곽도현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다. “지사에 급한 일이 생겨서 잠깐 다녀왔어. 나한테 연락했어야지. 어때? 드레스는 잘 맞았어? 마음에 안 들면 새로 맞추게. 아직 시간은 충분하니까.” 심가희는 그의 표정을 유심히 살폈다. 빈틈이 전혀 없었고 어제 피팅룸 밖에서 엿들었던 대화가 남 얘기 같았다. 순간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가, 피팅룸 안에 있던 사람이 곽도현이 맞는지 의심까지 들었다. “왜?” 곽도현은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심가희 때문에 의혹이 담긴 표정으로 물었다. “안색이 어둡네. 혹시 어머니 상태가 안 좋으셔?” 심가희는 고개를 저었고, 목소리가 살짝 갈라졌다. “어젯밤 병원에서 잠을 잘 못 잔 것 같아요.” 곽도현은 서류를 받아들고 책상에 내려놓았다. “오늘 하루 휴가 줘야겠네. 기사한테 데려다주라고 할게. 집에 가서 푹 쉬어, 알았지?” 심가희는 남자의 다정한 눈빛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퇴근하고 별장으로 와요. 맛있는 거 해놓을게요." 곽도현은 그녀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알겠어.” 저녁이 되자 심가희는 곽도현이 좋아하는 반찬 몇 가지를 준비해 식탁에 차려놓고 그가 오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1분 1초 흘러갔고 음식도 이미 다 식었지만 현관문에서는 아무런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음식을 다시 데워야 할지 고민하던 중 곽도현의 비서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가희 씨, 대표님께서 오늘 일이 생기셔서 기다리지 말고 먼저 쉬라고 하네요.” 심가희는 전화를 끊고 잠자코 있다가 휴대폰 연락처를 훑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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