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화 문신
게다가 꽤 오래된 문신인 듯 잉크가 피부에 배어들었고, 막 새긴 느낌은 아니었다.
만약 강주하의 말이 사실이라면 0825는 분명 그가 짝사랑한 사람의 생일일 것이다.
강태훈의 생일은 그녀도 알고 있다. 4월이다.
강우 그룹 회장 부부, 즉 강태훈의 부모님 생일은 모두 7월이다.
물론 자신과는 더더욱 상관없다.
그녀의 생일은 11월 14일, 네 자리 숫자 중 단 하나도 일치하지 않는다.
강태훈처럼 뼛속까지 차가운 사람이 문신이라는 다소 충동적이고 유치할 수도 있는 행동을 했다는 건 상대방을 얼마나 깊이 사랑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했다.
하윤슬은 어젯밤 자신의 섣부른 행동이 문득 후회되었다. 솔로인지 아닌지 물어볼 생각을 왜 못 했지?
아무리 잘생기고 몸도 좋고 능력이 출중해도 임자 있는 남자는 절대 넘보지 않는 게 최소한의 개념이다.
“주하야, 혹시 대표님 주변 사람 중에 누가 생일이 8월 25일인지 알아?”
“내가 무슨 수로? 성산 그룹은 강우 그룹 산하 회사야. 국내 시장 70%나 장악한 대형 투자 기업이라고. 강태훈은 무려 강우 그룹의 대표인데, 그런 분의 사생활 같은 건 일개 직원이 알 자격도 없지.”
말은 그렇게 해도 강주하한테서 들은 얘기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이때, 그녀는 문득 무언가 떠올렸다.
“잠깐, 강우 그룹 수석 변호사 허수정이 8월생이었던 것 같은데... 이력서 본 적이 있거든. 돈도 많고 얼굴도 예쁜 여자였어. 전에 우리 대표님이랑 같이 행사 참석했다가 실시간 검색어에도 올랐었지. 사진 찾아서 보내줄게.”
“괜찮아.”
하윤슬이 재빨리 끼어들었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재벌가 로맨스 드라마 한 편이 머릿속에 뚝딱 그려졌다.
어쩐지 강태훈이 오늘 말이 심하다 했더니, 그야말로 사무적인 태도에 체면 따위 봐주지 않았다. 아마도 그녀가 쓸데없이 떠벌리고 다닐까 봐 일부러 다른 사람들 앞에서 모르는 척 선을 그으려 한 거겠지. 그래야 혹시라도 소문이 새어나가면 아무도 안 믿을 테니까.
오너 자리에 앉으려면 역시 눈치가 백 단이어야 하는 모양이다.
전화를 끊고 하윤슬은 객실로 돌아와 간단히 세수했다. 그리고 헐렁한 옷으로 갈아입은 뒤 노트북을 켜서 새 프로젝트 자료를 정리했다.
현재 매달 들어가는 어머니의 거액 의료비 때문에 연애고 뭐고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녀가 키보드를 빠르게 두드리는 동안 옆에 놓인 무음 상태의 휴대폰 화면이 여러 번이나 반짝이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눈이 슬슬 감겨 남은 업무는 내일로 미루려던 찰나 그제야 휴대폰을 확인했다. 강태훈이 4시간 전에 세 번이나 음성통화를 걸었고 카톡 메시지까지 한 통 남겼다.
[일어나면 답장해요.]
그녀를 찾는 의도는 뻔했다.
아마도 어젯밤 일을 함구하라는 경고나 입막음용 돈을 주겠다는 얘기겠지. 만약 대가까지 받으면 진짜 몸 파는 거랑 다를 바 없다.
하윤슬의 손가락이 머뭇거리다가 빠르게 타이핑하기 시작했다.
[어젯밤 일은 없었던 걸로 할게요.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리고 전송을 누르자마자 마음이 바뀌어 강태훈의 카톡을 차단해버렸다.
이렇게 하면 본인도 안심하겠지.
휴대폰을 내려놓고 하윤슬은 잠들었다.
그러다 진성호의 전화가 걸려 와서 다시 깨어났다.
“프로젝트 계약서 안나한테 넘겨.”
“과장님...!”
하지만 입을 열자마자 전화가 뚝 끊겼고, 그녀에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하윤슬은 어쩔 수 없이 일어나서 계약서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캐리어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서류철을 찾지 못했다.
분명 호텔에 체크인했을 때 꺼내서 확인했었는데...
순간, 하윤슬의 몸이 얼어붙었다.
‘젠장.’
그날 아침, 너무 급하게 나오다 보니 계약서를 1501호에 두고 온 모양이었다. 아마 강태훈이 주웠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