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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나 지금 태하 씨 장난 받아줄 기분 아니에요.” 이하음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진태하가 대단하다고 해도 위암 말기 환자를 치료하는 건 불가능했으니까. 20분 후. 이하음의 차량이 병원 주차장에 멈췄다. 진태하는 살았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전벨트를 풀었다. ‘5년 전에 용병 놈들과 함께 탱크를 몰았을 때보다 더 스릴 있었던 것 같네.’ 이하음은 운전석에서 내리자마자 진태하와 함께 병원 안으로 뛰었다. 병실 쪽으로 가보니 이운해가 보였다. “아빠, 할아버지는 좀 어때요?” 이운해는 빨개진 눈으로 이하음을 보더니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것 같아...” 그는 이하음의 등을 토닥여준 후 고개를 돌려 진태하를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계속 네 이름만 불렀어. 너한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 것 같아.” 진태하는 이석범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내 부모가 누구인지 얘기해주려는 거겠지.’ 병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산소 호흡기를 단 채 병상에 죽은 듯이 누워있는 이석범의 모습이 보였다. 이석범의 주위로 죽음의 기운이 한가득 몰려있었다. 진태하는 고작 하룻밤 사이에 지나치게 쇠약해진 그를 보고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어제 식사 자리에서 상태를 확인했을 때는 이 정도까지 심각하지는 않았다. 하룻밤 사이에 종양이 가슴팍 전체에 퍼질 정도는 아니었다. 진태하는 이석범의 모습을 보며 문득 5년 전에 완수했던 의뢰 하나가 떠올랐다. 5년 전, 진태하는 진강호의 명으로 D 국으로 가 현지 용병들과 함께 생화학 실험실을 부수고 실험체들을 구출해 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세포 성장을 가속하는 약물을 봤었다. 그 속도는 암세포 증식 속도보다 더 빨랐다. ‘누가 어르신한테 그 약물을 주사한 게 확실해.’ “할아버지...” 이하음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석범의 손을 잡았다. 이운해는 이석범의 곁으로 다가가더니 진태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지, 태하 왔어요. 눈 좀 떠보세요.” 이석범은 태하라는 말에 안면 근육을 움찔거리며 천천히 눈을 떴다. 뭐라 얘기하려는 듯 입을 움찔거리기는 하지만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이석범의 입가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 봐도 여전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아버지!” 그때 이운산이 살집이 있는 중년 여성과 함께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 여성은 이운산의 아내인 양윤정이었다. “아버지, 괜찮으세요?” 이운산은 병상 가까이 다가오더니 눈물을 흘리며 비통한 표정을 지었다. 양윤정도 눈물을 훔치며 이석범의 곁으로 다가왔다. 눈물을 계속 닦아내고 있기는 하지만 손수건은 뽀송하기만 했다. “아버님, 저희 두고 떠나시면 안 돼요. 아버님께서 기둥처럼 계속 계셔주셔야죠!” “선생님, 이쪽입니다!” 그때 나이가 지긋한 의사 한 명이 병실 문을 열며 개량 한복을 입은 노인을 안으로 들였다. “김 선생님!” 노인을 본 한영애가 활짝 웃으며 반겼다. 그녀가 줄곧 기다렸던 김태원이라는 명의가 바로 눈앞에 있는 이 노인이었으니까. 김태원은 강주시의 최고 명의라 불리고 있는 사람이고 현재는 의사 협회 부회장까지 맡고 있다. 그는 70대 노인이었지만 머리만 흰색으로 덮여있을 뿐 얼굴에는 주름 하나 없었다. 심지어 젊은이들처럼 피부에서 광까지 났다. 김태원은 원장과 한영애를 번갈아 보더니 조금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두 사람 모두 같은 환자 때문에 나를 찾은 거였군.” 한영애는 그제야 고종수 원장도 김태원에게 부탁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종수는 한영애가 김태원을 알고 있다는 것에 조금 놀란 듯한 얼굴이었다. “선생님, 어서 저희 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이운해의 말에 김태원은 얼른 병상 옆으로 다가가 이석범의 상태를 확인했다. 동공 상태부터 맥박까지 전부 확인한 김태원은 아무 말 없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 표정에 이씨 가문 사람들은 심장이 철렁해져서는 숨을 죽인 채로 있었다. 한편 진태하는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에 김태원의 얼굴만 계속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디서 봤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무리도 아니었다. 13살 때부터 스승님의 명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녔으니까. 안면을 튼 사람을 전부 다 기억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겠네요.” 김태원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위암 말기라 어떻게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 “할아버지!” 이하음이 통곡하며 한영애의 품에 안겼다. 이운산 부부는 아예 무릎까지 꿇고 눈물을 흘렸다. “다들 나가주세요. 지금부터 치료 들어갈 겁니다.” 그때 진태하가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이하음은 진태하의 말에 울음을 멈추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아까부터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선생님도 포기한 걸 자기가 하겠다고?’ 한영애도 똑같은 생각을 한 건지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선생님께서 하신 말 못 들었어? 선생님이 누군지 알고 감히 건방을 떨어!” 이운산이 호통치며 말했다. “꼭 알아야 합니까? 어르신의 병만 치료하면 되는 거 아니었어요?” 진태하가 병상 가까이 다가왔다. 이운산은 무릎 꿇은 자신의 바로 앞으로 다가온 진태하를 보더니 얼굴을 굳히며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생님 존함도 모르는 게 어디서 까불어? 아버지는 지금 온몸에 암세포가 퍼진 상태야. 그런데 네까짓 게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김태원은 진태하를 한번 훑어보더니 이운산에게 말했다. “해보라고 하세요. 혹시 알아요? 은둔 고수일지?” 말은 이렇게 했지만 큰 기대는 없었다. 위암 말기는 아무리 대단한 의사가 와도 치료할 수 없을 테니까. “저 청년은 누군가?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고종수가 이운해를 바라보며 물었다. “진태하라고 제... 제 사위입니다,” 이운해는 창피한지 고개를 반쯤 숙인 채로 답했다. ‘허풍을 떨어도 분위기를 봐가면서 떨어야지 이제 어떡할 셈이야!’ “의학 전공을 한 자인가?” 고종수가 다시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운해의 목소리가 점점 더 낮아졌다. “지금 장난하나?” 고종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진태하를 바라보며 외쳤다. “거기 젊은이, 좋은 말로 할 때 지금 당장 병실에서 나가게나!” 김태원은 그가 어렵게 모신 분이었기에 고종수는 지금 이 상황이 매우 불편했다. “나갈 생각 없으시면 그대로 계시던가요.” 진태하는 귀찮다는 얼굴로 답해주고는 이내 바지 주머니에서 잔뜩 해진 가죽 가방을 꺼내 들었다. 두루마기를 펼치듯 가방을 펼치자 길이가 서로 다른 뱀 모양 금침이 들어있는 것이 보였다. 금침을 본 순간 김태원은 마치 망치로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길이가 서로 다른 24개의 금침... 이건 태을 신침인데?!’ “젊은이가 오만하기 짝이 없군. 유 간호사 당장 보안팀 불러!” 고종수가 화를 내며 말했다. 이에 간호사가 얼른 나가려는데 김태원이 떨리는 손으로 제지했다. “잠깐!” ‘태을 신침을 갖고 있다는 건 설마... 사조의 후예인 건가?’ “선생님, 왜...” 고종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일단... 가만히 있어 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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