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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사실 김태원도 태을 신침을 스승님으로부터 전해 듣기만 했지 실제로 보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의 스승님은 사공에게서 전해 들었고 사공은 사조를 따라 의술을 배운 지 20여 년 만에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다. 전해 내려오기를, 당시 사조는 태을 신침으로 병자가 아닌 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한다. 워낙 신비로운 힘이고 잘 사용되지 않는 힘이기에 김태원은 지금 흥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진태하가 오른손으로 가죽 가방을 한번 훑자 24개의 침이 한순간에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곧바로 진태하의 손바닥 위에서 멋대로 회전하기 시작했다. ‘이건 이기어침!’ 이기어침이란 스스로의 기로 침들을 통제하고 부린다는 뜻이었다. 김태원은 심장이 두근대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이 흥분을 도저히 참아낼 수가 없었다. ‘사공도 끝내는 포기하고 만 기술인데 이 젊은이는 어찌 이토록 간단하게 다루는가! 이제는 의심할 것도 없군. 이 젊은이는 사조의 후예가 맞아!’ 진태하는 오른손으로 내뿜는 기로 침을 통제하고는 왼손으로 살짝 튕겼다. 그러자 금침 하나가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움직이며 이석범의 가슴 쪽으로 날아가 박혔다. 똑같은 방식으로 계속해서 튕겨대니 24개의 침이 전부 다 이석범의 몸으로 가 박혔다. 침들은 멋대로 움찔거리며 스스로 열을 만들어냈다. 암은 사람들이 아직 정복하지 못한 불치병 중 하나로 오직 태을 침술만이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해 낼 수 있다. 태을 신침은 금색 빛깔을 내는 침이라 다들 금으로 된 침이라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정확히 어떤 재료로 만들어진 것인지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진태하도 그저 태을 신침으로 암세포를 완전히 제거할 수 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태을 신침은 아무나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정확한 혈 자리에 침을 놓을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또한 24개의 침은 각기 용도가 달라 헷갈리기라도 하면 큰일이 나게 된다. 즉, 태을 침술은 복잡하고 재능이 있어야 하는 기술이라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것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세상에 이토록 놀라운 것이 있었을 줄이야.” 고종수가 눈을 크게 뜨며 중얼거렸다. 기술 좋은 한의사들이 침을 놓는 장면을 많이도 봐왔지만 침에 손을 대지도 않고 놓는 침술을 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신기한 장면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고중수는 여전히 마음속에 품은 의문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석범은 위암 말기 환자였으니까. 만약 명의인 김태원조차 손을 쓸 방법이 없다고 한 것을 진태하가 해내 버리면 이건 의학계 전체가 떠들썩하게 될 것이다. 이하음은 진태하의 등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거짓말이 아니었어. 정말... 정말 방법이 있는 거였어.” 한영애는 딸의 팔을 잡은 채 이하음보다 더 눈을 반짝였다. ‘역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야. 진태하는 우리 가족을 구원할 구세주 같은 존재야!’ “정말 아버지 병을 낫게 할 방법이 있었던 거라고...? 이것 참...” 진태하와 이하음의 결혼을 제일 강력하게 반대했던 이운해마저 지금은 넋을 잃은 채 진태하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보다 한참이나 어린데도 존경심이 마구마구 솟아올랐다. 고종수와 김태원이라는 실력 좋은 의사들도 손을 대지 못한 걸 진태하는 가능하다고 말하며 화려한 침술까지 선보였으니까. 만약 이대로 이석범이 완치되면 진태하의 이름은 분명 널리 널리 퍼질 것이다. 한편 이운산 부부는 그다지 기뻐하지 않았다. 자꾸만 시선을 피하고 식은땀까지 흘리는 것이 이석범이 완치되는 걸 두려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30분 정도 흘렀을까, 심전도 측정기의 수치가 정상 수치로 돌아왔다. 그리고 흙빛이었던 이석범의 얼굴에도 서서히 붉은 기가 돌았다. 진태하는 그걸 보더니 손을 가볍게 휘두르며 24개의 금침을 모두 거두어들였다. “쿨럭!” 그런데 금침이 거둬지자마자 이석범이 대량의 피를 토해냈다. 산소호흡기가 순식간에 적갈색으로 물들었다. 심지어 군데군데 찐득한 이물질 같은 것도 보였다. “할아버지!” “아버지!” 이하음 일가가 깜짝 놀라며 얼른 병상을 에워쌌다. 하지만 이운산은 피를 보더니 눈에 띄게 안심하며 꽉 쥐고 있던 주먹도 풀었다. ‘그럼 그렇지. 자기가 허준도 아니고 위암 말기 환자를 어떻게 치료해?’ “당신 지금 아버님한테 무슨 짓 한 거야!” 양윤정이 씩씩거리며 진태하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진태하가 이씨 가문으로 찾아온 날, 일 때문에 가족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남편으로부터 모든 얘기를 다 전해 들었고 레이만 별장을 얻지 못한 것에 배 아파하며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토해낸 피와 찐득한 이물질들은 재생능력을 상실한 암세포와 종양 잔여물입니다. 전부 다 처리해 두었으니 어르신은 이제부터 요양만 제대로 잘하시면 됩니다. 암 진행 속도가 갑자기 빨라진 건 누군가가 세포 성장을 가속하는 약물을 어르신께 투여했기 때문입니다.” 진태하는 그렇게 말하며 차가운 눈빛으로 이운산을 바라보았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런 짓을 할 사람은 이운산밖에 없었으니까. “너, 너 그 눈빛 뭐야?” 이운산은 진태하의 눈빛에 괜히 움찔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도 모를 놈이 감히 내 남편을 의심해? 죽고 싶어?” 진태하는 표독스럽게 외치는 양윤정을 보며 음산한 목소리로 경고했다. “입 함부로 놀리지 마세요. 경고는 한 번밖에 안 합니다.” 양윤정은 진태하의 기에 눌린 듯 얼른 이운산의 뒤로 숨었다. 김태원은 뭔가를 고민하는 듯 턱을 매만지더니 한영애를 바라보았다. “환자의 상태가 위독해진 시각이 정확히 언제죠?” “아마 새벽 5시쯤이었을 거예요.” 한영애가 답했다. “어젯밤에 환자를 돌본 사람은 누구죠?” “새벽 한 시 전까지는 아주머님 부부가 돌보셨고 그 뒤로는 저희 부부가 돌봤어요.” 한영애는 그렇게 말하며 이운산 부부를 무섭게 노려보았다. 만약 진태하가 한 말이 사실이면 이운산 부부의 짓이 맞았으니까. 김태원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이운산 부부를 바라보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젊은이가 말한 약물은 실제로 존재하는 약물이 맞고 대개 투여하고 5시간 정도 흐른 뒤에야 환자가 통증을 느끼게 됩니다. 즉, 시간대로 보면 이 환자는 자정 정도에 약을 투여 당했다는 말이 됩니다.” 해당 약물은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무서운 약물이었기에 김태원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X새끼가!” 이운해가 욕설을 내뱉으며 이운산 쪽으로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을 정면으로 맞은 이운산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이운해, 너 미쳤어?! 감히 나한테 손을 대?” 이운해는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이운산의 말이라면 무조건 복종했고 그를 상관처럼 따랐다. 그런데 그랬던 사람이 지금은 미친 들개처럼 이운산에게 달려들었다. “이 버러지 같은 인간! 죽어!” 이운해는 몇십 년간의 분노를 전부 다 쏟아내듯 악을 쓰며 이운산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여기는 병실이다! 떠들 거면 싹 다 나가!” 고종수가 눈을 부릅뜨며 이씨 형제에게 호통쳤다. 이하음은 이운해가 움직임을 멈춘 틈을 타 얼른 그쪽으로 향했다. “아빠, 그만 해요!” 이운해는 곧 울 것 같은 딸의 얼굴을 보더니 천천히 주먹을 내리며 다시 이운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아버지 일 이대로 못 넘어가니까 알아서 해.” 그런데 그때, 병실 문이 갑자기 열리며 이혜정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뒤에는 무시무시한 기운을 뿜어내는 남정네들이 열댓 명 정도 서 있었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한번 해볼래요, 작은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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