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3장 나를 보내줘요
“민서희 씨.”
바로 그때 옆에 있던 사람이 주의를 주며 냉담함에 섞인 불만스런 어조로 말을 건넸다.
“대표님이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몸이 아무리 불편해도 무릎은 꿇고 있어야 하는 게 처벌이니까 조금만 더 움직이면 민준이 형한테 벌이 전가될 거예요.”
민서희는 이를 악물고 호흡이 흐트러진 채로 애걸하고 있었다.
“이민준 씨를 알아요? 그럼 저 좀 도와주시겠어요. 잠시만 쉬면 돼요. 임신한 몸이라 허리가 아파서 견디기 힘들어서 그래요.”
그 남자는 비아냥거렸다.
“몸이 견딜 수 없다는 걸 아는 사람이 왜 그리 잔인한 짓을 저질렀어요?”
“괜히 그쪽 때문에 민준이 형이 이래저래 도와주느라고 얼마나 험한 벌을 받았는지나 알아요? 그랬는데도 형은 여전히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살인자를 뭐 하러 돕는 건지.”
민서희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는 살인자가 아니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는 그 누구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었다.
그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잘 버티고 있어요. 정 안 되면 의사한테 진통제를 가져다 달라고 할 테니까 아무튼 오늘은 무릎이나 잘 꿇고 있으세요.”
절망스러운 민서희는 무릎이 더 이상 아파서 버티기 힘들었다.
바로 그때 그녀는 복부의 맹렬한 욱신거림을 느끼게 되었다.
“악!”
그녀는 고통스레 땅에 엎드렸다.
그 남자는 당황한 건 맞지만 민서희의 몸을 걱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뭐 하는 거예요! 여기에 감시카메라가 있다는 거 몰라요? 대표님이 수시로 확인할 건데 이러다가 정말 민준이 형을 죽일 수도 있어요! 빨리 일어나요!”
“제가...”
힘없이 입을 열고 있는 민서희는 아픈 탓에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고 복부는 마치 칼날이 휘젓는 것처럼 고통이 밀려왔다.
“배가 아파요... 제발... 제발... 위층으로 올려다주세요...”
그 남자는 이마를 찌푸렸다.
“가식 떨지 마세요. 무릎을 꿇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버티기 힘들다고 이러는 거예요? 괜히 아픈 척하면 제가 넘어갈 줄 아세요?”
그 남자는 코웃음을 쳤다.
“죄송한데 당신 같은 악독스러운 여자한테 연민을 느끼거나 그러지 않아요. 얼른 일어나세요!”
복부의 따끔거림은 잠시동안 이어지다 멈추게 되었으나 몸의 통증은 여전히 가라앉지 않고 있었다.
마음이 조급한 그는 그녀의 손목을 잠아당겨 몸 전체를 들어 올렸다.
얼굴이 종잇장처럼 하얘진 민서희는 어디에서 힘이 솟구쳐 올라온 건지 홀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박지환 씨! 박지환 씨!”
그녀는 카메라 방향을 맞출 수 있기를 바랬다.
“보고 있다는 거 알아요!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왜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거예요? 설령 나한테 기회를 안 준다고 해도 우리 아기한테는 시간을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올라가서 검사만 받게 해 줘요. 제발 부탁해요!”
민서희의 행동에 적잖이 놀란 그 남자는 민서희를 제지시켰다.
“함부로 소리 지르면 어떡해요? 움직이지 말고 얼른 가서 다시 무릎 꿇어요!”
필사적으로 고래를 흔들고 있는 민서희는 몸 아래에서 뜨거운 물줄기가 흘러내린다는 걸 느끼고 치마를 걷어 올렸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그 남자는 땅바닥의 피를 보고 얼어붙었다.
민서희가 아픈 척을 한 게 아니었다...
배가 아픈 건 물론이고 심지어 피까지 흘렀는데 이대로 가다가 뱃속의 아기를 지킬 수 없게 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그가 멍해 있자 민서희는 이미 입술 색이 파랗게 질릴 정도로 아파 그의 다리를 붙잡고 애원했다.
“뱃속에 박지환 씨의 아기를 임신하고 있어요... 박지환 씨가... 이 아기를 원할 거예요.... 가서 전화 좀 줘요... 제발 나 좀 보내달라고 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