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84장 누구 아기야
정신을 차리고 나니 자신이 결정할 수 없는 문제라 여긴 그는 박지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휴대폰이 한참 울리다 연결이 되었다. 그리고 영안실이 텅 빈 곳이라 박지환의 냉담한 목소리가 쉽게 들릴 수가 있었다.
“중요한 일 아니면 전화하지 말라고 했던 거 까먹었어?”
그 남자는 서둘러 말을 건넸다.
“대표님... 민서희 씨가... 피를 흘리고 있어요?”
“피?”
박지환은 잠시 망설이다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또 불쌍한 척하는 거야?”
민서희는 고통스레 땅바닥에 움크리고 있다 속눈썹이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박지환하고 그녀가 벌써 이 지경에 다다른 건가?
그는 그녀한테 일말의 신임도 없는 건가?
그 남자가 얼른 답했다.
“아니에요.”
그는 민서희를 힘끔 쳐다보더니 표정이 이상해졌다.
“저도 처음에는 일부러 아픈 척하는 줄 알았는데 제 눈으로 직접 다리 쪽에서 피가 흐르는 걸 봤어요... 아마도... 아기가...”
박지환은 얼굴빛이 갑자기 가라앉으며 매섭게 몰아붙이는 기세로 회의실에 많은 사람들이 숨을 쉴 수가 없었다.
민서희가 임신했어?
감옥에 있던 아기는 벌써 유산했잖아?
박지환은 이마를 찌푸리다 되물었다.
“누구 아기야?”
그 말은 그 남자를 포함해 민서희도 멍해졌다.
박지환은 화면이 스쳐 지나가다 무의식적으로 이마를 짚으며 짜증스레 말을 내뱉었다.
“아기를 임신하면 뭐 어쩔 건데! 법을 어긴 사람이라면 그게 임산부여도 벌을 받아야 하는 거야!”
“그리고 사람을 죽일 때 자기 아기는 왜 단 한 번도 고려하지 않은 거래? 스스로 자기 아기를 신경 쓰지도 않는데 내가 뭐 하러 신경을 써!”
그는 이를 악물며 아픔을 참다 통화를 마치려는데 전화를 끊기 전 부하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근데 민서희 씨가 임신한 아기가 대표님의...”
박지환은 제대로 다 듣지는 못했지만 그 글자들이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임신한 아기가....? 내 아기라고?
근데 왜 이 아기에 대해 아무런 기억이 없는 거지?
“대... 대표님?”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있다 한참 시간이 흘러 누군가가 입을 열었다.
“회의를 계속 이어갈까요?”
...
통화를 마치자 민서희를 바라보고 있는 그 남자의 눈빛은 착잡하기 그지 없었다.
“대표님의 태도 다 들었죠?”
민서희는 간신히 목구멍을 숨을 내쉬며 머릿속은 계속 어지러웠다. 다만 그와 반대로 너무나 추운 탓인지 몸에는 아무런 감각이 없었다.
그가 그들의 아기를 의심하고 아기의 생명마저 모른 체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그녀는 끈질기게 치맛자락을 움켜쥐었고 강렬한 충격 때문이었는지 눈앞이 캄캄해지다 이내 기절해 버렸다.
“민서희 씨!”
그 남자는 당혹스러운과 동시에 이민준이 홀에서 돌진해 민서희를 곧장 끌어안을 줄은 차마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 남자는 얼른 이민준을 제지했다.
“형? 미쳤어요? 대표님의 명을 어기면 어떠한 벌이 기다려질지 몰라요?”
이민준은 단호한 표정으로 답했다.
“중기야, 비켜. 대표님이 정신을 차리고 민서희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걸 알게 되면 그때 우리가 벌을 받게 돼!”
중기는 이해할 수가 없었고 이민준은 여지를 주지 않으며 민서희를 데리고 올라갔다.
그는 고민 끝에 휴대폰을 바라보다 이를 악물며 휴대폰을 부숴버리고 곧이어 따라나섰다.
...
회의실에서 고위층 인사들이 앞으로의 발전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하며 정좌에 앉아 있는 박지환을 가끔 쳐다보곤 했다.
박지환은 다리를 꼬고 앉아 이마를 찌푸린 채 어딘가를 주시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