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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굳이 그럴 필요 없어. 그냥 여기서 지내.” 성민서는 동생의 손목을 붙잡으며 미안한 눈빛을 건넸다. “보람아, 난 너 믿어. 도진 씨도 너한테 뭐라 안 할 거야. 우리가 결혼한 지 얼마 안 돼서 아정이도 아직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불안이 큰 애야. 전에 가출한 적도 있고. 괜히 또 자극할까 봐 도진 씨도 애한텐 쉽게 뭐라 못 해.” “난 괜찮아. 그냥 언니가 걱정돼서 그래.” 성보람은 안쓰럽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 부교수님 딸 성격 봐선, 언니 앞날이 평탄하진 않을 것 같아서.” 성민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원래 인생이란 게 순탄할 수 없어. 난 원래 받아들이는 건 빠른 편이야. 부모님 이혼하신 것도, 너랑 이모가 우리 집에 들어온 것도 다 받아들였잖아.” 그녀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도진 씨랑 결혼하기 전에 이미 딸 얘기 들었어. 알고 선택한 거니까 후회는 없어. 나중에 혹시 실패하더라도 그래도 노력해봤다고 말할 수 있잖아.” 성보람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그날 밤, 그녀는 언니와 함께 잠을 청했다. 한아정이 굳이 아빠 옆에서 자겠다며 성민서와는 절대 안 자겠다고 우겨댄 탓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배선우는 푹 자고 일어나 상쾌한 얼굴로 식탁에 내려왔다. 조금 늦게 내려왔더니 이미 배정헌, 김미경, 배혁수 부부까지 다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 모였으니 식사해요.” 배선우는 어딘가 빠진 느낌이 들었지만 곧바로 떠오르진 않았고 그냥 조용히 수저를 들려던 찰나였다. 쾅! 배정헌이 식탁을 내리쳤다. “놔. 배씨 가문 가훈 몰라? 사람 다 모이기 전엔 밥 먹는 거 아니다.” 순간, 배선우는 멍해졌다. 왜 오늘 아침이 이렇게 한가롭고 조용했는지 그제야 떠올랐다. ‘맞다. 한 명이 빠졌네.’ 그는 결혼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성보람은?” 김미경이 불쾌하게 말했다. “시간이 몇 신데 우리가 그 아이 하나 때문에 다 기다려야 해?” 배혁수가 슬쩍 맞장구쳤다. “어머니, 아직 어려서 늦잠 좀 자는 건 당연한 거예요.” “이미 시집와서 이 집에 들어왔으면 배씨 가문 가훈부터 제대로 배워야지.” 김미경은 큰며느리 조민주를 돌아봤다. “요즘 네가 잘 좀 가르쳐. 버릇없게 굴지 않게 제대로 교육 좀 해. 밖에서 창피한 짓 하지 못하게.” 조민주는 얄밉게 웃었다. “어머님, 전 못 그러겠어요. 그 성격에요? 게다가 어젯밤엔 가출까지 했던데요.” “뭐?” 이번엔 배정헌이 목소리를 높였다. “어떻게 된 일이야?” 배정헌의 눈빛이 곧장 배선우에게 향했다. “네가 또 무슨 말을 했구나?” 배선우는 어이없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아버지, 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배정헌은 냉소했다. 자신의 아들이 어떤 성격인지 모를 리가 없었다. “네가 험하게 말했을 게 분명해. 그리고 너희, 보람이가 가출한 걸 왜 이제야 나한테 말하는 거야? 배씨 저택은 교외라 교통도 불편해. 밤중에 여자애가 나가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으면 어쩔 뻔했어.” 조민주는 슬쩍 변명했다. “아버님, 저도 오늘 아침에야 알았어요.” 배정헌은 그녀를 무시하듯 외면하고 곧장 배선우에게 명령했다. “당장 데려와. 네가 저지른 일은 네가 수습해.” 배선우는 얼굴이 굳었다. “아버지, 저 이따가 회사에 가봐야 해요...” “그래? 그럼 그 여자가 아픈 건...” 배정헌은 의미심장하게 큰아들을 돌아봤다. 배선우는 이를 악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알겠어요. 다녀올게요.” “밥 먹고 가.” 김미경이 덧붙였다. “한 끼 굶는다고 안 죽어.” 배정헌이 비웃듯 말했다. 배선우는 이미 밥맛이 뚝 떨어진 얼굴로 차 키를 집어 들고 나갔다. 비서에게 성씨 가문 주소를 받고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성씨 집안은 작은 단독주택이었고 그저 작은 마당 하나 딸린 정도였다. 초인종을 누르자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성이 문을 열었다. 문 앞에 선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보자 그녀는 순간 얼어붙었다. “성보람 찾습니다.” 배선우는 차갑게 말했다. “저, 실례지만...” “배선우입니다.” 냉랭하게 떨어진 세 글자에 방희진은 잔뜩 긴장했다. 살면서 저렇게 잘생기고 기세 등등한 남자가 집까지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식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여보! 배선우 씨 오셨어요!” 쨍그랑! 성범철이 그만 그릇을 깨뜨릴 뻔했다. 그는 긴장과 아부가 뒤섞인 얼굴로 뛰쳐나왔다. “배선우 씨, 이런 귀한 분이 어쩐 일이십니까! 어서 들어오세요.” 배선우는 인상을 찌푸렸다. 성범철의 수준이야 자기 회사 과장 하나보다 못한 걸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성범철이 예전에 운 좋게 소씨 가문 딸을 얻어 결혼했기에 이런 인연이 생긴 것뿐, 아니었으면 그런 남자가 자기 장인이 될 일은 애초에 없었다. 자료를 뒤적이다 보니, 십 년 전에 바람피우다 이혼하고 지금은 유치원 교사랑 재혼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된 터였다. 그를 볼 때마다 정이 뚝 떨어졌다. 그러니 성보람과 이혼하고 싶다는 생각도 점점 더 굳어졌다. “성보람, 찾으러 왔습니다. 빨리 불러내세요.” 방희진은 어리둥절했다. “보람이가 지금 배씨 본가에서 당신 챙기고 있는 거 아니었나요?” “어젯밤 가출했어요. 여기 안 왔습니까?” 배선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배씨 본가는 밤이면 택시도 없는데 설마 무슨 일이라도...’ “안 왔어요.” 방희진이 더 당황했다. “보람이가 왜 가출을 해요? 설마 당신네 집에서 뭐라도...” “헛소리 마. 선우 씨 같은 분이 어떻게 보람이를 괴롭히겠어.” 성범철은 방희진을 밀치듯 앞으로 나섰다. “선우 씨,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저희가 애를 제대로 못 가르친 탓입니다. 그 아이가 좀 고집이 세긴 합니다. 지금 당장 전화해서 부르겠습니다.” 성범철은 급하게 성보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 그 시간, 성보람은 느긋하게 아침을 먹고 있었다. 그것도 한도진이 직접 끓여준 만둣국이었다. “언니, 나 이제야 부교수님 외모랑 학식 외에 장점 찾았어. 요리 잘하네.” 성보람은 감탄하며 한 입 떠넣었다. 그 순간,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자마자 들려온 건 성범철의 고함이었다. “이 기지배야! 몇 살인데 아직도 가출이냐? 선우 씨가 직접 널 찾으러 왔다. 당장 안 돌아와?” 성보람은 입가에 냉소를 띠며 대답했다.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그렇게 말했지만 그녀는 조금도 서두르지 않았고 천천히 아침을 다 비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성민서가 조급하게 말했다. “빨리 가야 되는 거 아니야?” “조금 서둘러야겠네. 아정이 눈빛 봐. 나만 보면 당장이라도 내쫓고 싶어 하잖아.” 성보람도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 언니가 그깟 사랑 때문에 참고 사는 게 참 대단했다. 만약 자신이 배선우 딸 비위를 맞추며 살아야 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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