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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그만 울어.” 배선우가 티슈 두 장을 뽑아 건넸다. 하지만 하지민은 받지 않았다. 고개를 든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엉망이었고 울먹이며 그를 바라봤다. “선우야... 만약 네가 사고 났다는 걸 그때 알았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돌아와서 너랑 결혼했을 거야. 설령... 과부가 된다 해도 후회 같은 건 없었어. 그런데... 왜, 왜 내가 돌아왔는데 넌 이미 내 사람이 아닌 거야.” 배선우는 차마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자신은 애초에 누구의 것이 된 적 없다고. 하지만 그녀의 절박한 얼굴에 결국 말을 꺼냈다. “우리 인연은 거기까지였던 거야. 지난 일은 그냥 보내자. 앞으로 더 좋은 사람 만나.” “싫어.” 하지민은 그의 옷자락을 꽉 붙들었다. “선우야, 난 오직 너만 사랑해. 이 생에 너 말고는 다른 사람 사랑할 수 없어. 네가 결혼한 이유도 병 때문에라고 했잖아. 넌 그 여자 사랑하지 않아. 아니었으면 나랑 사귀지도 않았겠지. 이제 깨어났으니 그 여자랑 이혼해.” “결혼이 장난인 줄 알아? 내가 싫다고 하면 그게 끝나는 거야?” 배선우는 그녀의 울음에 더 이상 인내심이 남아 있지 않았다. “양 비서. 지민이 좀 데려가서 쉬게 해.” 양대은이 조용히 들어왔다. 하지만 하지민은 그의 팔을 붙든 채, 애절하게 매달렸다. “아니, 아니야, 선우야... 나 너랑 헤어지기 싫어. 네가 없으면 그냥 죽는 게 나아.” 그 모습을 보는 양대은도 괜히 마음이 쓰였다. 하지만 상사의 냉랭한 얼굴을 보고는 어쩔 수 없이 하지민을 데리고 나섰다. 사무실이 조용해지자 배선우는 마치 짐 하나 덜어낸 듯 한숨을 내쉬었다. 예전에 하지민을 만날 땐 고상하고 단정한 여자였다. 이렇게 지독하게 매달리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안타까움 따윈 없었다. 그녀와 사귄 것도 결혼 적령기였기 때문이고 하씨 가문이 나쁘지 않은 집안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민 본인도 재능 있고 소운시에서 알아주는 명문가 자제였다. 이런 여자는 결혼 상대로 손색없었다. 성씨 가문의 성보람 같은 여자는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그렇게 됐을 뿐. 비록 언젠가 성보람과 이혼할지 몰라도 지금 이 시점에 굳이 하지민과 엮일 이유는 없었다. 그는 책상 위 서류에 시선을 옮겼다. 여자 따위가 사업보다 중요할 리 없었다. ... 아래층. 하지민은 설마 배선우가 이렇게 매정하게 자신을 내칠 줄은 몰랐다. “하지민 씨, 차에 타세요.” 양대은이 조용히 차 문을 열었다. “양대은 씨, 선우가... 그 여자랑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알려줘요.” 하지민은 차에 타지 않은 채, 간절하게 물었다. “죄송합니다. 대표님의 사생활은 제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양대은은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빈틈을 주지 않는 양대은의 태도에 하지민은 이를 악물었다. ‘정보를 못 얻으면 방법을 바꿀 수밖에...’ “됐어요. 데려다 줄 필요 없어요. 기분도 별로니까 혼자 좀 걸을게요.” 양대은은 잠시 고민하다 고개를 숙였다. “그럼 조심히 가세요.” 하지민은 차를 돌려 배씨 본가로 향했다. ... “민주 언니.” 마침 집에 있던 조민주가 직접 그녀를 맞이했다. “이건 제가 유럽 순회 공연 갔을 때, 우연히 한 레이나 부인 댁에 들렀다 구해 온 목걸이에요.” 하지민은 정성껏 준비해온 선물을 꺼냈다. “유명한 보석 장인, 제임스 씨가 직접 디자인했다더라고요. 언니가 목걸이 수집하는 거 알고 특별히 구했어요.” “어머, 마음이 참 고와.” 조민주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가 평생 즐겨온 취미라곤 이것 하나뿐이었다. “얼마야? 내가 살게.” “괜찮아요. 언니가 좋아해 주시면 그걸로 충분해요. 이건 따로 준비한 건데 여사님 드릴 시계예요. 여사님이 시계 수집 좋아하신다고 해서요.” 하지민은 준비한 걸 다 꺼냈지만 어느새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눈물이 ‘툭툭’ 손등에 떨어졌다. “아이구, 이걸 어쩌니.” 조민주는 안쓰러운 마음에 손수건을 꺼내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냥... 마음이 너무 아파서요.” 하지민은 목이 메어 말했다. “돌아와서야 선우가 사고 났단 걸 알았어요. 게다가... 병 때문에 결혼까지 했다고.” “몰랐어?” 조민주가 놀라 물었다. “전혀요. 그동안 공연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거든요. 스무 날 동안 7, 8개 나라를 돌았으니까요.” 하지민이 힘없이 웃었다. “어제서야 부모님께 들었어요. 원래 저를 보내려 했는데 선우가 위험하다는 소식에 포기하셨대요. 과부 될까봐. 하지만 알았더라면 난 꼭 돌아왔을 거예요. 난 선우 사람이니까요.” “그랬구나...” 조민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우리가 너희 부모님께 연락했는데 단칼에 거절하시더라. 이해는 돼. 나도 그때 도련님이 못 살아날 줄 알았거든. 누가 딸을 그런 집에 보내겠어. 돈도 없던 성씨 집안 빼고는.” “언니...” 하지민이 코끝을 훌쩍이며 조용히 물었다. “언니, 선우랑 그 여자...” “도련님, 그 여자 전혀 안 좋아해.” 조민주는 성보람을 떠올리며 얼굴을 찌푸렸다. “어제도 도련님이 쫓아냈다더라.” “정말요?” 하지민의 눈이 반짝였다. “지민아, 네가 훨씬 낫다.” 조민주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 성보람이란 애, 도련님이랑 어울릴 타입이 아니야. 집안도 별 거 없고 쪼잔하고 사람 귀찮게 하는 스타일. 그 애 들어온 뒤로 집안이 조용했던 적이 없어.” 하지민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배씨 가문 사람들이 성보람을 이렇게 싫어하다니. “그래도 언니, 너무 심하게 말하진 마세요. 듣기로는 성씨 가문도 소운시에서 건자재 사업 한다던데요. 아빠한테 전에 성범철 씨가 부동산 업체 찾아다닌다고 들었거든요.” 조민주는 더더욱 비웃으며 말했다. “성씨 같은 집안이랑 사돈 된 것도 창피해.” 그때였다. 위층에서 발소리가 났다. 성보람은 원래 물 마시러 내려왔다가 그 말을 들었다.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또렷하게 들렸고 모른 척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형님, 우리 성씨 집안이 뭐가 그렇게 창피하다는 거예요?” 성보람은 조민주 곁의 여자를 스윽 살폈다. 자신보다 몇 살은 많아 보이는 또렷하고 온화한 얼굴, 우아하고 기품 넘쳤고 눈가에 맺힌 눈물조차 남자의 마음을 녹일 듯했다. 조민주 역시 집안일 차림의 성보람을 유심히 살폈다. 검은 생머리에 뽀얀 얼굴, 청순하고 앳된 인상은 스무 살도 안 되어 보였다. ‘이 정도면 안심이네. 선우가 저런 타입 좋아할 리 없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우리 집 망신이지.” 조민주가 비웃으며 말했다. “아무리 사돈이라도 동서 아버지 여기저기 부동산 협력 요청 다니실 때, 우리 배씨 가문 체면도 좀 생각해 줘요. 소문이라도 퍼지면 창피해서 고개를 못 들겠어요.” 성보람은 단 한마디로 받아쳤다. “형님이 창피하시다면 차라리 우리 집에 비즈니스나 소개해 주세요. 우리가 굽신거릴 필요 없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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