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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화

이번엔 김미경도 큰며느리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만 좀 해. 내가 단 거 못 먹는다고 해서 세상 사람 다 단 거 못 먹게 해야 하니? 게다가 보람이는 얼마나 어리니. 단 거 좋아할 나이잖아. 여름이라 케이크를 냉장고에 넣어 둔 것도 시원하게 먹으려고 그랬겠지. 솔직히 말해서 진짜 맛있긴 하더라. 나 그렇게 맛있는 케이크 먹어본 거 오랜만이야.” 그 말을 하고 난 뒤, 김미경은 아직도 입맛을 다셨다. 배씨 가문 세 부자는 할 말이 없었다. ‘지금 이게 음식 맛 감탄할 상황인가.’ “걘 내가 갑자기 집에 올 줄 몰랐던 거지.” 세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특히 배선우는 오른손을 꾹 움켜쥐었다. 어제 바로 이 손으로 성보람의 뺨을 내리쳤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힘이 센지 누구보다 잘 알았다. ‘정말 아팠을 텐데... 입술에서도 피가 났던 것 같은데. 분명 억울했을 거야. 케이크 하나 사 와서 나눠 먹으려 했을 뿐인데 일이 이렇게 돼 버리고 제대로 들어보는 사람은 없고 모두가 비난했고 심지어 폭력까지 휘둘렀으니...’ 더군다나 만약 그녀가 그때 인슐린을 바로 투여하지 않았더라면 어머니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우리가 너무 했어.” 배혁수가 죄책감에 찬 얼굴로 말했다. “어제 선우가 때렸을 때, 꽤 세게 맞았던 것 같던데... 지금쯤 괜찮으려나 모르겠네.” “뭐? 보람이를 때렸다고?” 김미경이 눈살을 찌푸리며 둘째 아들을 바라봤다. “마음에 안 들더라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을 때릴 수가 있어?” 배선우의 잘생긴 얼굴이 조금 창백해졌다. “어머니를 해치려 한 줄 알았어요.” “그래도 그렇지, 뭘 해도 증거는 있어야지. 적어도 내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렸어야지.” 배선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도 왜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성보람을 왜 그렇게 나쁘게 보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미워하고 싶었는지. 결국 그건 편견이었다. 배정헌도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우리가 보람이를 오해한 거야. 선우야, 당장 집에 가서 보람이한테 사과해라.” “집에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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