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fic
더 많은 컨텐츠를 읽으려면 웹픽 앱을 여세요.

제8화

“내가 밥 한 공기 반 먹었다고 돼지라면 그럼 선우 씨가 병원에서 밥 두 그릇씩 먹은 건 뭐죠?” 성보람은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임신한 어미 돼지?” “성보람, 죽고 싶어? 감히 날 욕해?” 배선우는 평생 이런 모욕을 당한 적이 없었다. 실눈을 뜬 채 커다란 손으로 성보람의 팔을 거칠게 잡아당겼다. 순간 부러질 것 같은 아픔이 밀려왔다. “배선우 씨, 이거 놔요.” 성보람은 온 힘을 다해 팔을 비틀었지만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경고하는데 앞으로 말 함부로 하지 마.” 배선우는 큰 체격을 이용하여 무섭게 경고했다. “안 그러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성보람은 어릴 적부터 손해를 보면 참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성격이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닫고는 그대로 달려들어 배선우의 다른 한쪽 팔을 힘껏 물었다. 순간 고통이 밀려온 배선우는 성보람을 힘껏 밀어냈다. 성보람은 아픈 와중에도 입을 떼지 않고 오히려 더 세게 물었다. “알았어. 놔주면 되잖아.” 배선우가 먼저 팔을 풀고 나서야 성보람도 입을 떼고는 재빨리 2m 뒤로 물러서서 그를 경계하며 노려보았다. “너 혹시 개야?” 배선우가 옷소매를 걷어 올렸다. ‘독한 여자 같으니라고. 살점이 뜯겨 나가 피까지 났잖아.’ “먼저 손을 댄 건 선우 씨예요.” 성보람이 그에게 잡혔던 팔을 문지르며 말했다. “인터넷에 그런 말이 있더라고요. 가정폭력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으니 유일한 방법은 제일 처음 가정폭력을 당했을 때 맞서 싸우는 거라고. 선우 씨가 날 편하게 내버려 두지 않는다면 나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예요.” “가정폭력?” 배선우의 얼굴에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팔이 시퍼렇게 멍이 들었는데 가정폭력이 아니면 뭔데요?” 성보람은 경멸하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빌어먹을 것 같으니라고.’ 만약 성보람과 평생 부부로 산다면 젊은 나이에 화병으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꺼져. 여긴 내 방이야. 당장 나가.” “너무한 거 아니에요? 우리 손 잡기로 했잖아요. 지금 이 태도 자체가 계약 위반이에요.” 성보람도 지지 않고 쏘아붙였다. “손잡고 싶으면 성의를 보여줘. 좀 예의 바르게 굴라고.” 배선우는 그녀의 핑크 캐리어를 발로 걷어찼다. “당장 짐 가지고 내 방에서 꺼져.” 성보람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럼 난 어디서 자요?”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아버지가 시킨 결혼이니까 아버지한테 가서 물어봐.” 말을 마친 그는 옷을 챙기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허리를 굽혀 내팽개쳐진 캐리어를 다시 들고는 아무 말 없이 방을 나섰다. 별장이 아주 컸고 다른 게스트룸도 있었다. 하지만 성보람은 별장에 머물지 않고 짐을 끌고 당차게 그 집에서 나왔다. 경비원이 그녀를 막아섰다. “사모님, 이 늦은 시간에 짐 들고 어디 가세요?” 성보람이 쓸쓸한 눈빛으로 말했다. “남편이 저보고 꺼지라는데 나가야죠, 뭐.” 경비원은 눈앞의 연약하고 어린 여자가 너무 안쓰러웠다. 배선우처럼 매정하고 차가운 사람만이 이런 짓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지 마세요, 사모님. 제가 일단 회장님께 말씀드릴게요.” “아니에요. 경비원 아저씨도 돈 벌기 쉽지 않을 텐데 선우 씨의 심기라도 건드리면 어떡해요.” 성보람은 그를 말린 다음 한숨을 내쉬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짐을 끌고 밤거리로 나섰다. 그 말에 경비원은 너무나 감동했다. ‘사모님은 이 지경이 됐는데도 나 같은 사람을 걱정하고 계셔. 안 되겠어. 꼭 회장님께 말씀드려야겠어.’ 그런데 거실로 들어오자마자 남편이 달랜 덕에 기분이 나아진 조민주와 마주쳤다. 성보람이 배선우에게 쫓겨났다는 소리에 조민주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역력해졌다. “아버님 지금 혁수 씨랑 중요한 얘기를 나누고 계시니까 그런 작은 일에 신경 쓰게 하지 말아요.” “하지만 둘째 사모님이...” 조민주가 차가운 얼굴로 말을 가로챘다. “사람들 앞에 내놓기 창피한 정도인 사람이라 서방님이랑 어울리지 않아요. 그러니 이 일로 서방님을 화나게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경비원은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지만 쉽게 얻은 일자리라는 생각에 결국 말없이 제자리로 돌아가 문을 지켰다. ... 길거리로 나온 성보람은 성민서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 지금 어디야? 나 배선우한테 쫓겨났는데 지금 성씨 본가로 가고 싶지 않아. 언니네 집에서 하룻밤만 신세 지면 안 될까?” “뭐? 어떻게 이 시간에 여자를 밖으로 내쫓을 수가 있어? 배선우 그러고도 사람이야? 너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 성민서가 노발대발했다. “괜찮아. 어차피 그 집에 있고 싶지도 않았는데 잘 됐지 뭐. 핑계도 생기고.” 성보람이 태연하게 말했지만 성민서는 마음이 아팠다. 어쨌거나 그녀를 대신해서 결혼한 것이었으니까. 그녀를 서둘러 주소를 알려주었다. “여기까지 올 수 있겠어? 내가 데리러 갈까?” “아니야. 여기 차 있어.” 성보람은 차 한 대 없는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보면서 거짓말했다. 성민서가 왔다 갔다 고생하는 게 싫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왠지 조금 울적해졌다. 부자 동네라 버스나 택시, 공용 자전거 같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었다. 어둠을 헤치고 1km쯤 걸어서야 겨우 택시를 부를 수 있었다. 10분을 기다리자 흰색 차 한 대가 앞에 멈춰 섰다. 성보람은 재빨리 트렁크를 열고 짐을 실은 뒤 조수석에 앉았다. “아저씨,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5분 걸린다고 했는데 10분이나 기다렸잖아요.” 안전벨트를 매고 나서야 운전석을 돌아보았다. 아주 젊은 남자였는데 회색 셔츠에 빳빳하게 다려진 넥타이를 하고 있었다. 창밖의 어두운 가로등 불빛이 뚜렷한 이목구비를 비췄다. 그녀는 조금 얼빠진 얼굴로 말했다. “요즘은 기사님들도 다 이렇게 잘생겼어요?”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의 시선이 핸들 위의 자동차 로고로 향했는데 놀랍게도 마세라티였다. 성보람은 눈을 깜빡이면서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마세라티로 콜택시를 해요?” 남자의 두 눈에 장난기가 스쳐 지나가더니 가볍게 웃었다. “어쩔 수 없어요. 너무 가난해서 집에서 타지 않는 차를 몰고 돈 벌러 나온 거예요.” 성보람이 입을 쩍 벌렸다. “그렇게 가난하시다면 혹시 집에 세를 내놓을 만한 빈집은 없나요?” “있죠.” 남자가 뒤쪽의 부유한 동네를 가리켰다. “저쪽에 수영장이랑 테니스장이 딸린 별장이 하나 있는데 혹시 관심 있어요?” 성보람이 멋쩍게 웃었다. “기사님이 가난한 거라면 그럼 전 빈털터리겠네요.” 남자는 급히 출발하지 않고 왼손을 핸들에 올린 채 그녀를 보며 씩 웃었다. 그 모습에 성보람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뭐야? 설마 변태를 만난 건 아니겠지? 부자들 중에도 밤에 콜택시를 하는 변태들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때 성보람의 휴대폰이 울려 전화를 받았는데 상대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지금 어디예요? 차가 도착했는데 안 보여서요.” 성보람은 창문을 열고 뒤를 돌아보았다. 마세라티 뒤에 하얀색 혼다 한 대가 멈춰 있었다. 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새하얘졌다.

© Webfic, 판권 소유

DIANZHONG TECHNOLOGY SINGAPORE PTE. LTD.